복지는 빈곤 통치 수단인가?
복지는 빈곤 통치 수단인가?
  • 최낙관 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 승인 2024.03.1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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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관 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최낙관 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경쟁의 가치를 기치로 내건 자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물결은 ‘부의 편중’과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옹호론자들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부의 편중을 촉발하지만,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를 통해 전체적인 부를 증가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비판론자들은 ‘바닥을 향한 경주’(race to bottom)를 통해 양극화와 빈곤이 심화하고 있다며 그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빈곤에 대한 이념적 담론은 여전히 팽팽히 맞서며 진행 중이다. 과연 빈곤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차는 좁혀질 수 있을지 그리고 나아가 이를 통해 해결책이 모색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할 뿐이다.

이처럼 빈곤을 바라보는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하지만 빈곤을 마주하는 우리의 인식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빈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수급자 수, 빈곤율 등 숫자로 표현된 결과로서의 빈곤 현상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빈곤 문제의 통찰적 이해는 이러한 인식의 한계를 넘어 결국 결과로서만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빈곤 접근이 왜 중요한지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과정으로서 빈곤은 어디에나 있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자. 예컨대 집 대출금으로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house poor)는 물론 흔히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을 지칭하는 ‘지옥고’ 그리고 쪽방촌, 다세대 주택, 임대아파트 등 빈곤 현실과 징후는 우리 삶 곳곳에 녹아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척의 가난을 보고 듣고 냄새 맡을 수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시야는 무심하게 과정이 아닌 결과로서의 빈곤만을 응시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국가적으로도 빈곤을 사회구성원 일부의 문제로 국한하고 그들을 빈곤 정책의 객체이자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반성적 의미의 깊은 성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최근 주목을 받는 조문영 교수의 책 『빈곤 과정: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은 ‘경계 없는 불평등’의 시대, ‘의존의 문제화’를 지적하며 복지의 빈곤 통치를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장해 온 복지의 역사를 복지 공급자와 수요자가 서로 의존하며 구축해 온 관계의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역학관계에서 복지 종사자들이 빈자에 기대어 생존하면서도 그들에게 낙인을 씌우며 그들에 대한 심판자를 자임하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가 빈곤에 대한 제도적 보장을 공고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서로 의지하며 정을 나누었던 ‘따뜻한 복지’는 실종되었고 나아가 국가 주도의 사회 통치가 복지를 통합과 연대가 아닌 선별적 포섭과 사회적 배제의 표상으로 만들었다며 일침을 놓고 있다.

물론 ‘과정으로써 빈곤’이라는 관점에서 복지가 빈곤 통치의 수단이라는 주장에 일정 부분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결과로써 빈곤’을 넘어 ‘과정으로써 빈곤’을 이해하는 흐름에서 제도적 복지의 궁극적 목표가 복지를 시혜가 아닌 권리로 보는 주장에 동의한다면, 국가의 복지적 개입이 크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즉 복지 수급자라는 빈곤의 낙인화를 걷어내고 복지를 사회권으로 격상시키는 일이 사회 진보의 과정이자 곧 복지의 역사가 아니겠는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우선 빈곤에 대한 국가 책임이 강화되고 있는 흐름은 고무적이다. 지난 2021년 무려 60년 만에 1촌 직계 혈족과 배우자에게 전가되었던 빈곤에 대한 부양가족 책임이 폐지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저소득층 생계보장을 위한 의무가 ‘가족부양’에서 ‘국가 책임’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규격화되고 제도화된 복지가 인간의 욕구를 다 충족시킬 수 없는 ‘차가운’ 복지라 해도 온정주의적 복지가 가져다주는 폐해를 덮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길을 가야만 한다. 비가 대지를 가리지 않듯, 모름지기 복지가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다.

최낙관 <독일 쾰른대 사회학박사/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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