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할 일을 하자
이제 할 일을 하자
  • 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 승인 2024.03.17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추위가 묽어지니 햇볕 아래서 이런저런 바깥일을 하고 싶은 시절이다. 어느새 바람 탄 구름처럼 새봄이 온 거다. 화단에 쌓인 묵은 낙엽을 걷어내니 새싹들이 보인다. 그 여린 것이 대지의 무게를 이기고 빼꼼히 고개를 내민 거다. 해발 300m에 있는 미술관의 양지바른 곳에서는 꽃잔디가 피어나고, 길가에는 매화가 만발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그늘진 곳에서도 꽃이 필 거고, 싱싱하고 청초한 산 꽃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묵은 껍질을 뚫고 나온 새순처럼 할 일을 시작하자. 올해도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를 추진할 거다. 이 프로젝트는 아시아를 비롯해 각국의 현대미술 현장을 시간과 공간 차원으로 연결해서, 묶으면 틀이 되고 펼치면 장이 돼는 보자기 같은 열린 미술판을 깔려는 의도이다. 필자는 확신한다.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가 비교적 고답적인 전북미술이 지향해야 할 가치이며 건강한 미술 생태계를 위한 대안이고, 그래야만 건실한 씨앗이 제자리를 잡고 백화제방(百花齊放) 할 수 있다고.

오는 4월 30일까지 <안녕하십니까?> 전이 열린다. 국제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미술가들의 예술적 발언을 통해 역사적 퇴행 속에서 몸살 앓는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죽음, 폭력, 부조리, 상흔 등 아름답지 않은 것들을 통해 개인과 사회가 불편해서 숨기고 싶은 어두운 면을 드러냈다.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은 채 세상을 두루뭉술하게 포장하거나 회피하기를 거부한 예술적 발언이다. ‘은유나 상징을 뺀 즉물적 직설이 묘하게 매혹적인 기획전’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도 우마레지던스는 계속될 거다. 입주 미술가에게 안정된 창작공간과 개인전·평론가 매칭·현대미술 특강 등을 지원한다. 지난 6년간, 동상골 절경과 단애(斷崖)가 절묘하게 맞물려 있는 이곳에서 중국·미국·일본·인도·스페인·태국·방글라데시에서 온 36명 미술가가 머물면서 한 치 아쉬움 없이 열정을 살랐다. 생동감이 충만한 미술가들은 상호이해와 격려 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길을 모색한 거다. 오는 12월에는 지난 시간 축적한 국제적인 관계망을 통해 해외로 진출할 거다.

지난해 12월, 연석산우송미술관은 인도 케케이엘람재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24년, 인도 케랄라에 한국 미술가 10명을 초청해서 인도 미술가들과 교류·연대하는 아트 캠프(2024.12.22~27)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2025년에는 연석산우송미술관 주최로 인도 미술가 10명을 초청해 한국·인도 아트 캠프로 연대를 이어갈 거다. 인도는 땅이 넓어서 서로 멀리 떨어져 활동하는 미술가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 아트 캠프가 발달해 있다. 일정 기간 일정 장소에 머물면서 창작·토론·전시 등의 행사를 통해 서로 긴밀하게 예술적 연대를 강화하는 인도의 독특한 미술판 문화이다. 교류는 불편함을 동반한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고정관념이 이질적인 것과 부딪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살아 있는 증거이고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건 분명하다.

어제는 배롱나무를 옮겨 심었다. 연석산문화예술촌 촌장님의 대문 오른쪽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나무다. 조경 전문가에게 주워들은 풍월에 따라 과감하게 가지를 쳐내고 풍경(風磬)을 달았다. 대개 처마 모서리에 다는 풍경을 나뭇가지 끝에 걸었다. 바람이 부는 대로 가볍게 흔들리는 물고기가 달린 풍경은 절집에서 공부하는 수행자가 눈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잠들지 말고 정진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실바람 속 풍경소리, 깎아진 절벽에서 물꽃이 피고, 그 아래 고요한 물이 담겨있는 연석산우송미술관은 세상의 헛된 욕망을 내려놓게 하면서 마음을 깨우는 마력이 있다.

 

문리 <연석산우송미술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