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여포’
‘방구석 여포’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 변호사
  • 승인 2024.03.0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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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너희 지역 국회의원이 누구야?” 정치 이야기를 나누다 서울 지인이 묻는다. 난감하다. 누군지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필자도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머뭇거리자 또 다른 지인이 답한다. “민주당이겠지.” 물음이 이어진다. “전북은 그래도 광주 전남과 다르게 몇 명은 다른 당 사람 아닌가?” 정치 이야기는 그만두고 화제를 돌리려고 하지만 추궁(?)은 계속된다. 어렵사리 ‘네임드’ 몇 명의 이름을 댄다. 패착이었다. “그 사람 아직도 정치해?”

한국사회에서 정치이야기는 금기 아닌 금기지만 한편으론 재미있는 소재거리기도 하다. 정치인에 대한 팬덤은 흡사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의 그것과 작동 방식이 유사하다. 지지정당은 응원하는 스포츠팀과 같다. 프로야구에 비유하자면 지역팀은 정당, 패넌트레이스는 총선이며 한국시리즈는 대선이다. 응원하는 팀의 우승 여부에 따라 한동안 승리감에 도취되기도 하고 열패감에 ‘이민 가야겠다’는 말도 한다. 정치 이야기로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싸움이 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정치이야기는 삼간다. 전북에 살면서 다른 의미에서 정치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피로감과 무기력감 때문이다.

서울에서 사는 동안 각종 선거철이 되면 즐거웠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지인들과 논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선거철이 되면 마치 응원하는 팀에 돈을 걸고 배팅하는 스포츠 토토처럼, 내가 가진 헌법상 권리인 투표권을 ‘배팅’했다. 박빙이 예사여서 ‘쪼는 맛’이 있었다. 거주했던 지역이 대한민국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였던지라 더욱 그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거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된 2002년 대통령 선거와 종로구 국회의원으로 정세균 후보가 당선된 19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낙향하고 나서는 재미가 없어졌다. 내가 참여한 적 없는 경선이 곧 본선이 되었다. 효능감이 떨어져 몇 번은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전북 지역 정치인들 가운데 ‘셀럽’이 있는가. 중앙정치무대에서 소위 말하는 ‘말빨이 센’ 정치인이 있는가. 과문해서 그런지 몰라도 알지 못한다. 한 시즌 최대패를 기록했던 쌍방울 레이더스를 응원하는 마음이랄까. 아니, 그래도 쌍방울은 초등학생 팬이었던 내게 홈경기 최다 연승기록인 17연승과 포스트 시즌 진출 두 번이라는 선물을 주었으니 비교 대상이 아니다.

전북은 특별자치도 출범을 가까스로 이루었다. 그럼에도 도민들은 여전히 중앙정부에 소외감을 느낀다. 잼버리 파행은 만만한 전북의 책임이 되었다. 새만금 예산은 78%나 대폭 삭감되었다. 국민연금공단이 수십 조의 수익을 내고 있지만 ‘제3금융중심지’ 지정은 요원하다. 지방 인구 감소를 고려하더라도 자칫 잘못 했으면 국회의원 의석수마저 줄어들 뻔했다. 지지정당이 여당일 때도 처지는 다르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은 도민과 기초·광역 의원들에게만 군림한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니 도민들의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다. 원 팀으로 뭉쳐도 부족할 판에 작은 우물에서 주도권 싸움만 한다.

사회에선 무능력하지만, 집안에선 횡포를 부리는 가부장을 요샛말로 ‘방구석 여포’, 옛말로 ‘방안퉁수’라고 한다. 강원도나 충청도와 같이 경쟁하는 정치, 중앙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가 절실하다. 언제까지 전북 유권자들이 선거 때마다 괴로운 선택을 강요받아야 하나.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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