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을 낳는 선택과 배열
새로움을 낳는 선택과 배열
  • 송호석 전북지방환경청장
  • 승인 2024.02.2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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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석 전북지방환경청장

 25년 전, 세계 영화팬들의 열광과 환호 속에 혁신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던 한 편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성전환 수술을 통해 지금은 자매가 된 워쇼스키 형제가 연출했던 ‘매트릭스(Matrix)’라는 영화입니다.

 디스토피아적 미래 속에 존재하는 화려한 가상공간, 그 안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액션시퀀스도 인상적이었지만, 많은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던 것은 비주얼 혁신으로 불릴 만큼 놀라웠던 시각효과였습니다.

 주인공인 ‘네오’가 날아오는 탄환을 피하는 장면과 더불어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순간은 또 다른 주인공인 ‘트리니티’의 공중 발차기 장면입니다. 관객은 인물이 공중에 정지된 채 360도 회전하는 시점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120대의 카메라를 조밀하게 둘러 촬영한 후 각 카메라에 포착된 찰나의 프레임을 이어 붙여 완성했다고 합니다.

 당시 몇몇 상업광고 영상 등에서만 쓰였던 이 기법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만들어 낸 것을 두고 한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현대의 창의성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범하게 선택해서 독창적으로 배열하는 능력이다.”

 탁월한 통찰입니다. 새로움을 낳는 선택과 배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비범함과 독창성의 크기에 따라 인터넷, 스마트폰, 챗GPT와 같이 일상을 바꾸는 혁신이 될 수도 있고 쓸모없이 버려지는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분하다고 여기는 관료사회에서도 새로움을 위한 노력은 이어져 왔습니다. 기존 제도의 불합리성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의 고민, 그리고 현실 여건에서 작동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배열하기 위한 수많은 토의는 정책을 다루는 관료집단의 일상이기도 합니다.

 매트릭스의 명장면과 같은 비범함과 독창성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오늘 소개해 드리는 ‘통합환경관리’ 제도도 혁신을 위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사업장은 환경법령에서 정한 배출·방류기준을 준수해야 합니다. 세차장은 물환경보전법에 맞게 폐수를 처리해야 하고 숯가마찜질방은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방지시설을 설치해 배기가스를 관리하면 그만이지만, 사업장 규모가 커질수록 준수해야 할 환경법령도 많아지고 그 내용도 복잡해집니다.

 대형 사업장이 준수해야 할 환경법령은 대기, 수질, 토양, 악취 등 7개 분야 법률입니다. 각각의 법령에 따라 허가를 따로 받아야 하고 소관기관도 달라서 때로는 도청을, 때로는 시·군청을 드나들어야 합니다. 사업자들은 복잡한 환경규제로 인한 불편을 호소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환경부의 ‘선택’은 통합이었습니다.

 2015년 ‘환경오염시설의 통합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7개 환경법령에서 정한 인허가를 통합하였고, 관리를 위한 소관기관도 환경부 소속 지방환경관서로 일원화하였습니다.

 사업자 편의를 증진하기 위한 방법의 ‘선택’과 더불어 오염물질 저감을 위한 정책수단의 효율적 ‘배열’도 고민하였습니다.

 배출시설별로 관리하던 방식을 사업장 단위로 변경하고 공정별로 오염물질 배출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최적가용기법을 적용토록 하여, 법정 기준만 지키면 된다는 사업자 의식을 바꾸는 동기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제도 시행 이후 ‘22년말 기준으로 초미세먼지 유발물질(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먼지)이 약 32%가량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제도가 안정될수록 그 편익이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일상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창의성은 천재들의 몫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이 한걸음씩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각 분야에서 자기 몫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의 현명한 선택과 배열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송호석 <전북지방환경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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