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의미와 미래… ‘세계화 실행’ 때가 되다
<포커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의미와 미래… ‘세계화 실행’ 때가 되다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4.01.07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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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록물-유광화 편지

 올해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지 130주년이 되는 해다. 반봉건과 반외세를 외쳤던 동학농민혁명은 이 땅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민중항쟁이었으나 오랫동안 ‘동학란’으로 불리는 등 폄하돼왔다. 다행히 1992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부터 난에서 혁명으로 역사 인식의 전환이 이뤼지기 시작했고, 2004년 동학특별법 제정으로 비로소 국가 차원의 신원(伸寃)이 이뤄졌다. 혁명 이후 2주갑을 맞았던 2014년에는 전국 곳곳에서 혁명을 재조명하는 일이 뜨겁게 일었다.

그리고 2019년 드디어 국가 차원에서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 제정됐으며, 지난해에는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등 미완의 혁명이 세계사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기에 이른다. 드디어 ‘세계화 실행’의 때가 된 것이다. 동학이 전라도만이 아닌 조선 땅 대부분에 걸친 거대한 변혁 움직임이었음을, 당시 조선과 청나라, 일본을 둘러싼 동북아시아 정세를 뒤흔든 대역사였음을 주도면밀하게 알려가는 일이 우리의 남은 숙제다. 

동학농민혁명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록물 -한달문 편지

 2024년은 동학농민혁명 세계화 작업에 불씨를 놓을 적기다. 지난해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자료 185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인의 시선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이 혁명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걸맞은 사회적 움직임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순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은 6일 인터뷰에서 “국내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100주년 때부터 기념시설이나 기념조형물을 만들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전국성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신 이사장은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유네스코 기록유산의 등재도 그런 차원에서 작업을 시작했던 것인데, 여론에는 아직 미비하지만 전국화라는 것은 어느 정도 달성이 되었다고 판단한다”며 “이제는 세계화의 차원으로 발돋움해야 하는 시기다”고 강조했다.

기념공원_상징조형물(죽창결의)

 그의 말마따나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인류의 중요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이 기록물들은 1894~1895년 조선에서 발발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동학농민군의 임명장, 회고록 등 동학농민군 기록, 동학농민군 진압에 가담한 관료 및 진압군의 공문서와 보고서 등 조선 정부 기록, 민간인의 문집 및 일기 등 민간 진압 기록, 개인들이 동학농민혁명을 목격하거나 전해 들은 내용을 기록한 개인 견문 기록 등을 망라한다.

 동학농민혁명은 전근대적 봉건주의 사회에서 근대민주주의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 속에 부패한 지도층에 저항하고 외세의 침략에 반대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 건설을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이다. 1894년 1월, 전라도 고부 농민들은 고부관아를 점령했다. 1892년 고부군수로 온 조병갑의 포학하고 가혹한 정치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봉기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다. 당시 조선 사회에는 관리들의 부패가 만연해있었으니,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뇌관만 건드리면 폭발할 기세였다. 그 도화선이된 고부봉기의 중요성을 이루 말 할 수 없다.

기념공원_울림의 기둥

 특히 혁명 과정에서 동학농민군은 민·관 협력 거버넌스 체제인 집강소를 설치하는 등 19세기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던 신선한 민주주의 실험을 보여줬다. 동학농민혁명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원으로서 갖는 무게와 함께 국제적인 위상으로서 가치와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신 이사장도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동학농민혁명의 의미가 한국사를 넘어서 동아시아의 인권문제나 평화문제, 그리고 세계사의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문제에 관해서 유네스코가 인정했다라는 의미”라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세계화를 좀 더 힘있게 추진해야만 하는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계기로 동학농민군이 이루고자 했던 대동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기념사업의 방향도 새롭게 요구된다.

불멸-바람길(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혁명군상)

 이를 위해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유족회 등 동학관련 단체, 유관 기관과 함께 ‘세계화’라는 목표를 향해 뛰어갈 원년을 다짐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사업으로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념 특별전시회, 세계기록유산 국제학술대회, 동학농민혁명기록물 브랜드화 사업, 기념식과 중계방송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동학농민혁명 최초의 승전지인 황토현 약 30만㎡ 부지에 조성된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 세계의 많은 사람이 발걸음하고 가치와 의미를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동학농민혁명 세계화 실행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안정된 조직과 예산이다. 기념재단이 출범한 2010년 이후 특별법에서 명시된 연구소가 13년이 지나서야 만들어진 것은 국가적으로도 반성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동학농민혁명연구소가 지난해야 문을 열었고, 기다렸던 학술지가 창간호가 이제서야 발간됐으니 말이다. 늦었지만 세계기록유산으로서의 가치에 입각한 동학농민혁명 학술연구와 자료조사 등 소프트웨어 관련사업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제대로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신 이사장은 “연구소가 첫 발을 떼고 첫 학술지도 세상에 내놓은 만큼 이제는 국제적인 연구자의 기고와 외국인의 논문들을 학술지에 담아내는 작업도 중요하며, 외국인들도 동학농민혁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영문논문도 다수 확보하는 등 학문적 성과를 이뤄내야 할 것으로 본다”면서 “지난해에는 6~7차례의 관련 세미나도 해낸 만큼 연구소도 올해는 활력 있게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문제로 남아 있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을 위한 명예 회복도 중요한 문제다. 신 이사장은 “세계화 실행을 힘있게 추진하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등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본다”며 “유족회나 이 문제에 앞장서는 분들에게도 반란에서 혁명으로 명예회복하는데 100년이 걸렸는데,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전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동학단체 등 어렵게 활동하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예산이 한정돼 그 수준이 미비해 안타깝고 미안할 뿐이다”고 덧붙였다.

기념공원_동학농민혁명박물관

 시민의 마음 속에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와 정신을 널리 알리는 일도 멈추지 말아야 할 터다. 그는 “전반적으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줄었는데 최근 ‘서울의 봄’이 다시 젊은 세대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조금은 환기시키고 있지 않은가 싶다”면서“좋은 드라마나 좋은 영화 한 편이 연구자들이 책 10권을 쓰는 것보다 훨씬 많은 효과를 가져오는데 이러한 기회를 갖는데도 재단이 관심을 두겠다”고 밝혔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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