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문의사의 사춘기(성장통)
암전문의사의 사춘기(성장통)
  • 박영삼 전주예수병원 유방갑상선혈관외과 과장
  • 승인 2022.04.1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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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삼 전주 예수병원 유방갑상선혈관외과 과장
박영삼 전주 예수병원 유방갑상선혈관외과 과장

외과는 영어로 GS라고 하여 General Surgery에 줄인 말이다. 하지만 예수병원 GS는 General Surgery말고 Great Surgery 또는 Gentle Surgery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만큼 예수병원 외과는 대단하고 또한 젠틀한 외과라는 자부심이 있다. 제가 1990년대 말에 외과 전공의를 할 때 외과 과장님들은 다들 환자들에게 따뜻한 맘으로 최선을 다해 진료하셨다. 그래서 배우는 저는 과장님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존경하였다.

전공의를 마치고 군의관 생활 후 기회가 되어 예수병원 외과 스텝으로 들어와 유방, 갑상선, 혈관외과 파트에서 진료를 시작하였다. 현재 원장님이신 김철승 과장님에게 유방, 갑상선, 혈관 치료를 배우고, 또한 서울아산병원 유방외과에 잠시 연수 가서 유방암 수술에 대해 배우면서 잘한다고 칭찬까지 받아 점점 유방, 갑상선 치료에 자신감이 붙었다. 김철승 원장님이 미국 연수하는 동안에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유방, 갑상선, 혈관 수술 및 진료를 하면서 실력이 느는 느낌이 들어 재미있고 좋았다. 이제야 암이라는 큰 산을 지금 열심히 헤매고 있고, 조금만 더하면 암치료의 정상이 보일 거라는 맘으로 열심히 하였다. 그때에 암으로 진단받은 환자들이 서울이나 큰병원에 가서 치료한다고 하면, “잘 치료하고 오세요” 하면서 의뢰서는 써주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나도 잘 하는데…’ 하면서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때는 유방암 갑상선암에 대한 치료와 공부가 재미있었다.

그런데 유방암으로 수술하고 추적 관찰하는 중에 충격적이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을 만났다. 그건 바로 유방암 치료 후 재발이 발생한 것이었다. 재발환자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수술을 잘못했나?’, ‘항암치료를 잘못했나?’ 하며 치료방법을 다시 리뷰해봤지만 원칙에 맞게 치료를 잘했는데 재발이 발생한 것이었다. 재발한 환자를 한 번 경험하니 마음이 무거워졌고, 암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와, 암환자 치료를 회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개원해서 암진단만 하고, 큰병원으로 전원시켜 암치료 및 재발에 대한 부담감은 덜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 당시에 이런저런 생각으로 얼굴이 어두웠나 보다. 외과 회식으로 저녁식사하는데 위암 수술 담당하는 과장님이 “박과장, 요즘 얼굴이 안좋은데 무슨 일 있어?” 물으시길래, 조금 생각하다가 고민을 이야기했다. “네, 유방암 수술하고 재발환자가 생기니 좀 맘이 힘드네요. 암환자를 치료하면 할수록 재발환자가 더 늘 것 같은데요, 그런 상황을 제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해서요?”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과장님이 조금 생각하시다가 살짝 웃으시며 이야기했다. “박과장은 그동안 하늘나라 몇 명 보내봤어? 이번이 처음이지?” “네?!!!” 뒤통수 한 대 맞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유방, 갑상선암은 그래도 다른 암에 비해 예후가 좋은 암인데 반해, 간, 위, 대장암들은 상대적으로 재발을 많고 예후가 더 안 좋은 암이다. 전공의 때를 생각해보니 간, 위, 대장암으로 치료하는 받는 환자 중에 재발하여 말기암으로 돌아가시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런 암을 담당하는 과장님들은 내가 이제 경험하기 시작한 일들을 미리 앞서 많이 경험하시고 마음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셔서 환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며 최선을 다하시는구나라고 느꼈다. 나는 암전문의사로 이제 시작인데 벌써 힘들다고 하니 참….

나는 암이라는 큰 산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이제 암이라는 산에 들어가려는 등용문 앞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공의 시절의 과장님들은 나의 좋은 선생님이고 가르쳐주는 분이라 무조건 존경했는데, 이 일을 느낀 뒤로 과장님들을 삶과 죽음을 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많은 고민을 하며 나아가는 선배의사로써 존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이 길에 뛰어들었기에 나에게 주어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치료함에도 하나님이 아닌 이상 암치료중에 재발환자가 생길 수 있다 생각하고, 그 짐을 어깨에 지고 가는 암전문의사가 되어가는 사춘기를 지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영삼 <전주예수병원 유방갑상선혈관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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