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53) 권순자 시인의 ‘소금’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53) 권순자 시인의 ‘소금’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1.05.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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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

 
 - 권순자 시인

 

 아버지 입원 중이시다

 다 떠나간 염전에서

 끝까지 바다를 일구시더니

 이제 소금기만 남아 누워 계시다

 단단하고 올곧으시던 몸 용해되어

 이젠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다

 그가 흘린 땀, 그 소금이

 내 온몸 혈관을 타고 흐른다

 그가 지고 나르시던 소금의 무게가

 죽음의 무게로 흔들릴 때마다

 내 늑골에서도 죄스런 소금 알갱이가 맺혔다

 내가 허우적거릴 때마다 잡아주시던 손

 흰 꽃가루 묻어나던 그 손이

 곁에 있어도 마냥 그리워지는 날

 아버지의 머리에서는

 눈발처럼 허연 소금의 뿌리가 드러나고

 모든 추억은 소금창고에 침묵으로 쌓여 있다

 그가 물려준 짜디짠 이 목숨,

 누군가의 가슴에 스며들어가

 쉬 무르거나 부패하지 않도록

 마침맞은 간이 되어주라는,

 형체가 녹아 없어져도 남은 짠맛으로

 부단히 길을 열어가라는

 얼얼하게 녹아 흐르는 말씀을 듣는 밤.

 

 <해설>  

 5월 8일은 어버이날이었습니다. 제가 시골 초등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몰라도 어버이날이면 아침 조회시간에 운동장에서 학생들을 모아놓고 어버이날 기념식을 거행했고, “장한 어머니 표창장” 같은 시상식도 함께 했던 기억이 선합니다. 어버이날이 되면 빠짐없이 불렀던 노래가사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 쓰는 마음/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네…’를 학생들 모두 불렀었지요. 

 이 시에서 시인의 아버지는 ‘은빛 소금’으로 형상화 되었습니다. 이젠 아버지가 쇠약해져서 입원해 계시네요. “아버지 입원 중이시다/다 떠나간 염전에서/끝까지 바다를 일구시더니/이제 소금기만 남아 누워 계시다” 아마 염전을 마지막까지 지켜 오신 분 같습니다. 

 병원에 누워계시는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의 지난날을 회고하는 사부곡(思父曲)이네요. “내가 허우적거릴 때마다 잡아주시던 손/흰 꽃가루 묻어나던 그 손이/곁에 있어도 마냥 그리워지는 날”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소금농사를 지으신 분이어서 “아버지의 머리에서는/눈발처럼 허연 소금의 뿌리가 드러나고/모든 추억은 소금창고에 침묵으로 쌓여 있다”고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이 가득한 시입니다 이 시에서도 보듯 우리는 아버지 혹은 어버이에 대한 회한(悔恨)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버이가 마냥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추억의 소금창고를 열어 어버이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며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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