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를 지킨 전북인
‘자산어보’를 지킨 전북인
  • 송영애 전주대학교 연구교수
  • 승인 2021.04.29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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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산어보(玆山魚譜)』는 흑산도로 유배 간 실학자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1814년에 완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학서이면서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해양생물 백과사전이다. 최근 영화가 개봉되어 더 유명해졌다.

 3권 1책으로 인류(鱗類, 비늘이 있는 어류), 무인류(無鱗類, 비늘이 없는 어류), 개류(介類, 껍질이 딱딱한 바다생물), 잡류(雜類, 기타)로 구분되어있다. 이처럼 해양생물 분류체계를 확립했다는 점과 어느 문헌에도 없는 어종에 대해서는 직접 작명하여 기술하였다는 점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어종은 조선 시대 해양생물 연구서 중에서 가장 많은 55류 226종을 담고 있다. 서술은 종별로 명칭을 제시하고 속명, 크기, 색깔, 어획 방법, 맛, 섬사람의 경험담 등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장창대(張昌大, 1792~?)의 큰 도움을 받아 지역 주민들의 전승 지식까지 기록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정약전은 장창대에 대해 “성품이 차분하고 꼼꼼하며, 모든 자연물을 세밀하게 살펴보고, 집중해서 깊이 생각해 이들의 성질과 이치를 파악했기 때문에 그의 말을 신뢰하였다.”라고 서문에 기록하였다. 또 자산어보 내용 중에 ‘昌大曰(창대가 말하기를)’이 여덟 번, 島人之言曰(섬사람들이 말하기를)이 두 번 나온다.

 자산어보에 대한 관심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방면에서 꾸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한글 국역본이 발간된 것은 1977년이다. 그런데도 풀리지 않는 몇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저자 문제’다. 연구진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자산어보에는 ‘晴案(청안)’이라는 단어가 무려 71회 등장한다. ‘晴’자는 한자 사전에도 없는 글자다. 이런 이유로 1977년의 연구에서는 이를 생략하고 국역하여 발표하였다.

 그러나 ‘청안’의 ‘청’이 바로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제자인 이청(李晴, 1792~1861)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공동 저자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후에는 빼고 국역하였던 부분, ‘晴案’을 ‘이청이 덧붙이는 말’, ‘이청에 의하면’ 등으로 국역하였다. ‘晴案’의 내용은 정약전이 서술해둔 부분에 『본초강목』, 『동의보감』, 『박물지』 등 약 56종의 문헌으로 내용을 보완한 것이다.

 자산어보 글자는 총 23,022자다. 이 중에서 정약전이 기술한 글자는 13,310(57.8%)이고, 이청이 기술한 글자는 9,712(42.2%)이다. 또 해양생물 226종 중에서 이청이 단독으로 추가한 것이 16종이다.

 이를 두고, 처음부터 정약전이 이청에게 문헌 조사를 부탁하였고, 자료를 받아본 후 정약전이 직접 기술했다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이청이 ‘原篇缺, 今補之(원편에는 빠져 있어, 지금 더한다)’, ‘今補(지금 더한다)’라고 쓴 글귀가 무려 13번이 나온다. 무엇보다 서문에는 신뢰할 수 있는 장창대를 초청하여 함께 숙식하며 연구하여, 차례를 매겨 책을 완성하였다고 기록하였으나, 이청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해양생물 분류법을 창안하여 이에 맞도록 정리한 책이다. 이 과정에서 장창대가 도움을 주었다. 훗날 이청이 문헌 자료로 설명을 더 해 증보 또는 재편집하였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으나, 아직도 결정된 바는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원본이 없다’는 점이다. 국내·외에 12종이 있으나, 모두 필사본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국내 10곳에 있으며, 8곳은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하여 대학교의 도서관이고, 2곳은 개인 소장이다. 국외로는 일본의 대학과 연구소 2곳에 있다.

 이중 국내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산어보의 이전 소장자와 개인 소장자를 살펴보면 전라북도 출신들이 눈에 들어온다.

 익산 출신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李秉岐, 1891~1968)의 가람본(嘉藍本)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있다. 김제 출신 역사학자로 동양사 연구에 주력한 동빈 김상기(金庠基, 1901~1977) 소장본은 부경대학교와 영남대학교에 부경대본(釜慶大本), 영남대본(嶺南大本)으로 보관되어 있다. 고창 출신으로 광주체신청장을 역임하고, 한국 우정의 큰 별인 석산 진기홍(陳錤洪, 1914~2010)의 호남본(湖南本)은 개인 소장으로 내려오고 있다.

 다른 도서관의 이전 소장자와 개인 소장자를 살펴보면 충남 연기 이희승, 경북 경주 이상백, 평북 운산 김태준, 전남 순천 정문기 등이다. 한 곳의 도서관은 이전 소장자가 없다.

 그럼 국내 도서관에 소장된 자산어보 필사본의 이전 소장자는 7곳 중에서 3곳, 그리고 개인 소장 2명 중 1명이 전북 출신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지켜왔고, 현재 지키고 있다.

 지금도 ‘자산어보를 누가 썼는가?’에 대한 논쟁은 현재 진행 중이다. 그러나 ‘누가 지켰는가?’에 대한 정답은 전북인임이 틀림없다.

 송영애 <전주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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