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잣대와 현실의 변화, 그리고 공공의 이익
과거의 잣대와 현실의 변화, 그리고 공공의 이익
  • 백순기 전주시설공단 이사장
  • 승인 2021.04.28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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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추진하려고 다각적으로 검토하다 특혜 논란이 우려돼 실행하지 못한 사업이 있다고 가정하자. 몇십 년의 긴 세월이 흘러 제반 여건과 환경이 뒤바뀐 상황에서 다시 이 사업을 하려 한다면 과연 지금도 특혜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을까? 미래를 보지 못하고 단순히 구습에 얽매여 “과거에도 그랬으니 지금도 그 기준에 맞춰 사업을 해야 한다”고 고집한다면 과연 옳은 일일까?

과거의 잣대로 현재와 미래를 재단할 수 없다. 아니, 그렇게 해선 안 될 것이다. 옛날에는 이렇게 했으니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절대 건강하고 미래발전적인 변화를 꾀할 수 없다. 무엇이든, 시대의 흐름과 가치의 방향에 맞춰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과거의 기준이나 규칙을 고집하며 무조건 안 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과거의 노예’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런 때는 현실의 변화를 잘 살펴보고,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무엇이 공익을 위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공익이 훨씬 크다면 특혜성 우려가 예상된다 해도 실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혜(特惠)의 사전적인 의미는 ‘특별히 베푸는 혜택’이다.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혜택’은 특정인에 대한 혜택을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 특별한 혜택을 베푼다면 그것을 특혜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특정인에게 특혜를 준다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혜를 줘도 할 수 없는 일, 안 되는 일은 종종 있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참으로 아이러니 한 일들이 많다. 수년 동안 지역에서 해결하지 못한 일을 다른 사람이 현실에 맞게 새로운 시각에서 한번 해보겠다고 시도하면 그때부터 말들이 많아진다. 자신은 못하면서도 정작 다른 사람이 실행에 옮기면 심하게 간섭하려 하거나 해코지하려 한다. 이것도 통하지 않는다면, 믿거나 말거나 식의 마구잡이식 허언(虛言)을 늘어놓기 일쑤다.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다른 사람이 특별한 일을 하면 심사가 뒤틀려 음해와 비방에 나서는 사례도 있다. 물론 인간사 어느 지역이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유독 우리 지역은 더욱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남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심리가 작동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소수의 의견이겠지만.

지역에서 발생하는 일이 많은 사람에게 회자하면서 변질되고, 세파에 휘둘리다 보면 원래의 취지와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역에서 힘에 부쳐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필요하다면, 지역사회의 발전과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서 빗장을 열고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우리 지역에 도움이 되고 다수 주민에게 도움이 된다면 특정인의 이익이 대수로운 일일까. 지역민의 행복과 안녕을 위한 사업이라면 법의 영역 안에서 특별한 혜택이라도 줘서 일을 성사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필자의 생각에 공감할 것이라고 본다. 공리(公利)를 위해 작은 혜택은 줘도 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할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입을 꽉 다물고 있을 뿐이다. 무작정 혜택을 줬다고 문제를 제기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큰 나무 아래에는 많은 사람이 기대고 쉴 수 있는 공간과 그늘이 있다. 이런 거목을 만들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면 시간 단축과 재정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단순히 특혜 논쟁에 휘말려 구시대적 현실만 고집한다면 미래가 우리에게 다가올 공간을 잃게 된다. 무조건 반대할 일은 아니다. 대승적 차원에서 과연 무엇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고 주민들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특정인의 이익 그 자체에 얽매여 논쟁의 늪에 빠지기보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없는지, 여러 부문을 세심하게 돌아보고 각종 사업을 검토하고 실행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의적 법리 해석을 하거나 현재 상황에 맞지 않은 과거의 잣대로 접근해 특혜성을 운운하는 것은 고차원적이지 않은 일이다. 다소 도움을 줘서라도 지역이 잘 살고, 주민들의 생활이 훨씬 나아질 수만 있다면 주저할 일이 있겠는가. 특정인에게 혜택을 줘도 하지 못할 일이라면 다른 사람이라도 할 수 있게 기회를 주고 도와줘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 지역을 발전시키고 미래를 위한 선택이 될 것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남이 한다고 해서 발목잡기식 언행을 하는 것만은 삼가야 할 것이다.

백순기<전주시설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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