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7> 욱일승천기와 경성, 그리고 술
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7> 욱일승천기와 경성, 그리고 술
  • 이강희 작가
  • 승인 2021.05.09 15: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는 어디일까? 독자분마다 떠오르는 나라가 있겠지만 필자는 북한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총구를 겨누며 존재를 부정해왔지만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서 서로 국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 다음은 일본이다. 가까운 나라다보니 서로에게 좋든 싫든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1910년부터 1945년까지 만 35년간 일본에게 지배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일본의 지배가 시작된 8월 29일은 국치일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이날 부일배(附日輩)신하들의 모략으로 날조된 문서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됐다. 강제병탄이후 일제는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라는 것을 9월 30일에 발표하면서 조선의 경성(수도)이었던 한성을 더 이상 한성이라는 고유명사로 부르지 않고 경성이라는 보통명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경성은 한성을 부르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한 나라의 수도를 묻거나 가리키는 용어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도성을 가리키는 용도로 경성을 사용한 사례가 몇 차례 있었지만 조선시대 내내 한성이나 한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1945년에 광복으로 서울이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하기 전까지 한성(또는 서울)은 경성으로 불린다. 조선의 정체성을 없애고 일본 천황의 땅인 조선의 행정중심지라는 의미로 시작된 경성이라는 명칭을 나라를 찾으려고 항일운동에 나선 투사들은 사용하지 않았다. 1910년 전후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1919년까지 독립운동과 광복을 위해 세워졌던 여러 정부와 단체에서도 한성은 쓰였을지언정 경성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단체는 없었다. 그만큼 경성은 우리의 정서와 먼 단어다. 1920년대부터 서울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면서 식민지의식을 탈피하려는 여러 시도도 있었다.

항일운동을 그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대를 반영하기 위해 경성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당시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모더니즘을 가미한 의상과 생활모습이 담긴 장면들이 그려지면서 영상물에 나오는 모습을 따라하려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유행을 탔다.

욱일승천기의 경우에는 역사적인 문제가 많이 부각되어 사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반감과 문제성으로 언론의 질타를 받다보니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문제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경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한성대신 사용된 경성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우기 위해 시작된 일제의 정책 중에서 우선적으로 실행된 것이다.

경성이라는 단어가 주는 레트로적인 느낌은 역사성 인식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여기에 역사적인 개념이 없는 공무원들이 상호나 상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광복된 나라 대한민국에 욱일승천기와 동격인 경성은 번화한 여러 도시 중심지마다 활개를 치고 있다. 튀김, 분식, 제과점이나 맞춤양복, 술집, 그리고 술 이름에서도 볼 수 있는 경성이라는 단어에 광복을 위해 몸 바친 선열의 노력은 빛이 바래고 있다.

여과없이 사용되는 이러한 모습에서 역사교육과 역사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물건을 만들어 팔아 이윤을 남기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도록 유도해서 돈을 버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기위해 당연한 것이다. 마케팅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지만 역사적 아픔이 깃들여져있는 흔적을 굳이 자극하면서까지 해야 할까?

지켜져야 할 경계는 있다. 역사적 사고마저 결여된 이들의 모습에서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등한시되는 역사교육으로 인한 역사인식의 부족은 다시 일본인의 지배를 받아도 할 말을 없게 만드는 짓이다. 식민지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상호와 상표는 사라져야 한다. 하나의 역사로 인정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나라를 되찾는 과정에서 희생된 분들을 생각한다면 경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주점이나 술은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

글=이강희 작가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