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문(不二門)
불이문(不二門)
  • 김동수 시인/(사)전라정신연구원장
  • 승인 2021.04.2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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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 가면 보통 세 개의 산문(山門)이 있다. 그 첫 번째 문이 일주문이고, 두 번째문이 천왕문 그리고 세 번째 문이 불이문(不二門)인데, 이는 본당(本堂)에 이르는 마지막 문이다. 불이란 글자 그대로 진리는 둘이 아니라 그 근원은 모두 하나라는 뜻이다.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지만 실은 서로 연계되어 있기에 세상만물이 근원적으로 다르지 않다(不二)는 사상. 때문에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상태를 초월하여 번뇌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에서 불이문(不二門)을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선과 악, 유와 무, 생과 사 등, 상대적인 것들을 초월하여, 양극을 지양한 중도(中道)이다. 어린 시절의 나와 오늘의 내가 둘이 아니듯, 6·25 당시의 한강과 오늘의 한강이 같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다르지 않으니, 그건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게 연기되어 있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세계, 그것이 불이요 중도의 세계이다.

노자 『도덕경』에서도 밝음과 어둠, 높고 낮음, 화(禍)와 복(福)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다. ‘번뇌가 곧 보리(菩提)다’는 불경이나 ‘고통 속에 영광이 있다’는 성경의 말씀도, ‘번뇌’와 ‘보리’, ‘고통’과 ‘영광’이 서로 다르면서고 다르지 않은 불이적(不二的) 관계임을 깨우쳐 준 경구, 이다. 물이 얼음이 되고, 얼음이 곧 물이 되었다가, 그것이 다시 수증기가 되어 날아가 구름이 되니, 세상의 모든 형상은 있다가도 없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세계이다. 무릇 드러나 있는 모든 형상에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니, 있고도 없고, 없고도 있는 유뮤불이(有無不二)의 세계. 그러기에 얼음과 수증기는 물이면서도 물이 아니고, 그렇다고 얼음과 수증기를 물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불이의 세계가 자연이고 우주의 본상이다.

세상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주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저마다 절대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일다불이(一多不二)의 장엄한 화엄세계 속에서 서로 의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불이사상은 만물제동, 주객일여의 세계관이다. 시인들이 사물을 분리하거나 현상에 집착하지 않고, 심미적 안목으로 그것을 하나의 유기체로 통찰하고 있음도 그것이다.

사나이 가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 / 그 누가 오래도록 객수에 젖어 있나

한 번 큰 소리로 천지를 뒤흔드니 / 눈 속에 복사꽃 편편이 흩날리네

(남아도처시고향 기인장재객수중(男兒到處是故鄕 幾人長在客愁中)一성갈파삼천계 설리도화편편홍(聲喝破三千界 雪裡桃花片片紅))

-한용운, 「오도송(悟道頌)」전문

‘객지’와 ‘고향’에 얽매이지 않으니, ‘눈 속’에서도 ‘복사꽃’이 편편(片片)이 난다. 서울에서 만나면 전라도가 고향이지만, 외국에서 만나면 코리아가 고향인데, 어찌 객지와 고향을 분별하고 봄과 겨울을 서로 다르다 구분하랴. 우리네 인생도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이 지구라는 행성에 잠시 지나가는 나그네인데, 고향과 객지를 어찌 나누어 구분하랴. 봄에 피는 꽃도 실은 겨울의 눈 속에서 살아남은 맹아(萌芽)의 연기체인데 어찌 겨울의 눈보라와 봄날의 꽃이 다르다 할 수 있느냐 반문하고 있다.

눈앞에 현존하는 것들에 사로잡혀 그것이 근원적으로 무상하고 허망한 것임을 보지 못하고 집착하게 된다면, 우리네 삶은 갈등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 없음(無)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그저 허망하고 공허한 것이라고만 간주한다면, 이 또한 허무주의에 빠져 무력해진다. 그러니 생을 즐기되 그것에 너무 탐닉하지도, 치우치지도 말라는 가르침이다.

세상 모든 것들의 근원을 보면 독립된 개체로 나누어져서 있지 않고 서로 연기되어 있다. 다만 인(因)과 연(緣)에 따라 한동안 어울려 있을 뿐이다. 때문에 너와 나, 유와 무, 생(生)과 사(死)의 양극단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유무불이(有無不二)의 중도에서 조화와 원융의 세계를 향하고 있음이 진정한 불이(不二)의 세계가 아닌가 한다.

김동수<시인/(사)전라정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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