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때 달라요
그때그때 달라요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 승인 2021.04.1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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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대학원 후배를 만났다. 마흔에 접어든 필자의 입장에서 나이차가 꽤 나는 후배와의 대화는 흥미로웠다. 대화는 취업, 결혼, 유학, 아르바이트와 같은 딱딱한 주제를 통과하다 비교적 가벼운 주제로 넘어갔다. “너 ‘애플빠’잖아. 휴대전화는 삼성을 쓰네?” “전화통화 녹음이 안되거든요.” 노트북과 태블릿 PC, 데스크탑 PC까지 애플 제품을 쓰는 친구라 의아해서 물어봤는데 답은 간단했다. “에이~ ‘애플빠’가 어딨어요. 사안별로 봐요. 사안 별로” 후배는 예전 내가 그에게 한 말을 ‘인용’하면서 눙쳤다.

‘사안별로 보자’는 말은 내가 자주 그에게 했던 말이다. 말인즉 정치적 스탠스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고 곧잘 진영논리에 휘둘려 본인의 진정한 성향과 이익을 망각하는 일이 있으니 쟁점별로 자신의 입장을 정하자는 뜻이었다. 말이 쉽지 잘 되지 않는 일이다. 예컨대 미국 정치는 보수의 공화당과 리버럴한 민주당으로 나뉘는데 국내정치, 대외정책, 경제문제와 같은 이슈뿐만 아니라 지구온난화, 낙태, 총기소유와 같은 문제까지 거의 완벽하게 두 입장이 대립한다.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드물게 사안별로 달리 스탠스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다. 양당제는 아니지만 정치체제와 선거제도의 특성상 미국식 양당제에 근접하게 운영되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선명하다면 선명하지만 한편으론 ‘죽기 살기 식’이다.

정치학에서는 ‘균열’(cleavage)이란 말이 있다. 정치학자 시모어 마틴 립셋은 ‘균열’을 한 사회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세력들 간의 이해관계가 역사적이고 문화적으로 구조화됨에 따라 소속 구성원들을 일정하게 분리시키는 기준으로 정의했다. 전통적인 정치학에서 구성원들을 구획하는 계급이나 계층이라는 말보다 조금 더 세련되고 정치한 용어인 듯하다. 한국사회에서 계급투표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저소득층이 보수정당을, 화이트칼라계층이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한 레퍼런스로 보인다. 즉 한국은 지역과 세대의 ‘균열’이 계급을 압도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정치 효능감’(political efficacy)란 말도 있다. 개인이 한 사회내의 정치과정에서 발휘될 수 있는 자신의 영향력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정치행위인 투표의 경우, 자신이 투표하여 선출된 정당이나 정부의 활동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신념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을 때 느끼는 주관적 감정이다. 예컨대 삼성 휴대폰에 돈을 지불하고 구입한 뒤 사용하면서 느끼는 만족감 같은 것이다.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의 72.5%가 보수정당 후보인 오세훈을 택했다. 20대 남성들은 ‘보수는 아니다’라면서도 오세훈을 지지했다고 한다(중앙일보 2021. 4. 9.자 기사 참조). 20대는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경험했으며, 문화적으로는 민주화가 공고해진 2010년대를 살고 있어 대체로 리버럴한 성향으로 볼 수 있다. ‘공정’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의식, 직접 몸으로 느끼는 일자리 문제, 최근 이슈로 떠오른 젠더문제가 20대 남성이 발 딛고 서 있는 ‘균열’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장경제하에서 ‘가성비’를 추구하는 합리적 소비를 하는 성향처럼, 정치영역에서의 정치적 효능감도 보수정당을 지지한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전북은 대체로 민주당에 맹목적인 지지를 보냈다. 지난 대선과 총선, 지선이 그랬다. 20대 남성 서울 시민의 선택과 같이 앞으로 전북도 자신의 균열과 정치적 효능감에 비추어 합리적 ‘소비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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