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해(陰害)의 칼끝은 자신의 심장을 향한다
음해(陰害)의 칼끝은 자신의 심장을 향한다
  • 백순기 전주시설공단 이사장
  • 승인 2021.03.2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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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타인의 흠결을 까발리거나 음해하는 말들을 듣게 된다. 자신의 허물은 뒤로 한 채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 마타도어 식으로 중상모략하는 사례도 적잖게 접하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발설했다고 하여 보복성으로, 혹은 다른 곡해된 말들을 만들어 유포하고 그것이 사실인 냥 흑색선전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잘못을 지적하면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기보다 곤경에 처한 자신의 처지에만 집착한 나머지 상대를 흑색선전하거나 외부의 힘을 빌려 타격을 가하려는 이들도 접해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예전보다 특히 요즘에 이런 경향이 더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정말, 말 많은 세상이다. 아주 작은 일도 크게 부풀리고 음해하며, 마타도어식 비방으로 순진한 사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일이 흔한 시대이다. 하지 않은 일을 소설처럼 미화하여 직접 한 것처럼 소문을 내고, 비실명으로 SNS에 글을 올리거나 진정을 해서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가관인 것은, 확인도 하지 않고 전해 들은 내용을 마치 사실이고 진실인 냥 곧이곧대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정확한 정보나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사안이 진실처럼 호도돼 일파만파 퍼져 나가기도 한다.

안타까운 점은, 남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고 남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세태(世態)가 과거에 비해 농후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시대가 아닌 아날로그 시대에는 순수함이 있었다. 적어도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며서 음해하는 일이 지금처럼 다반사로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엔 어떠한가! 내 일 아니라고 재미삼아 SNS에 무작정 글을 올리고, 격한 반응이라도 나오면 되레 즐기는 잔학한 새디스트(sadist) 경향까지 확인하게 된다. 아날로그 시대를 경험해온 사람들도 자신의 이익과 당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말이 되든 안 되든 인정사정없이 까발리고 살을 붙여 확대 재생산해 위해를 가하려는 사례도 목격하게 된다. 과연 누가 이런 일에 공감을 표할 수 있겠는가.

좋지 않은 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정치와 관련된 헤프닝도 그렇다. 어떤 경우에는 나라와 국민을 위한 진정한 정치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 때도 있다. 말에 무게는 지위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사실, 혼자의 힘으로 성공하는 독불장군은 없다. 누구나 그러하듯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함께 공을 들이며 성공의 길에 접어든다. 하지만 타인의 공은 잊은 채 ‘내가 잘나서, 내가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을 보면,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하는 것 같다. 함께한 사람이 자신보다 더 잘되면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라거나 “누구 때문에 잘 나가는데…”라는 아둔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함께해서 성공한 사람을 기분 나쁘다고 폄훼 하는 것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일까.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 사회에 기본과 상식, 존중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타인을 끌어들이는 행위는 결국 자신을 수렁으로 밀어 넣는 것과 다름없다. 한순간의 위기는 모면할 수는 있으나 결국 모든 것이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자신을 반추하고 자신에게 엄격하게 대하는 사고부터 길러야 한다. 내 것을 챙기기 위해 남을 무고하고 비방하고 음해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한 잘못된 행동은 결국 그 음해의 칼끝이 자신의 심장을 향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백순기<전주시설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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