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서로 돕는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
  • 이항근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교육위 설치지원 전문위원
  • 승인 2021.03.09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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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겨울 가지치기한 꾸지뽕나뭇더미를 치우다 가시에 손가락 여러 곳을 찔렸다. 마디 끝마다 컴퓨터 자판 두드리기가 어렵게 아프다. 통증은 시나브로 사라질 것이지만 나무 더미 아래서 만난 풀잎 새싹들은 이 밤에도 영토를 넓혀가고 있을 것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화단의 천리향도 봉오리를 벙긋거린다. 이제 곧 제 몸을 열어 꽃을 틔우고 그 향기를 千里까지 이르게 할 것이다. 어쩌면 그 꽃이 전하는 것은 향기만이 아니라 겨울가면 봄이 온다는 천리(天理)일성 싶다.

 만물이 아니더라도 풀잎 어린 싹 하나로 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긴 겨울의 시간을 이겨낸 그 모진 생명력이 아름답다. 제 여린 잎으로라도 하늘을 나눠 들겠다는 몸짓으로 느껴져 더 아름답다.

 산에 들어가니 몇 그루 산수유가 소나무 푸른 잎과 어울리며 연노랑 빛깔로 핀다. 진한 노란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주변과 관계하려는 겸손함 같다. 꽃집에서 만나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제 색을 강하게 드러냄과 다르다. 산 중의 꽃나무들은 저 혼자만의 색을 두드러지게 고집하지 않는다. 시장 속 경쟁과 자연 속 상생의 차이인가보다.

 러시아의 동물학자 케슬러는 1880년 ‘상호부조의 법칙에 관하여’라는 강연에서 ‘자연에는 상호투쟁의 법칙 이외에도 상호부조의 법칙이 존재한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특히 종이 계속 진화하기 위해서는 상호부조의 법칙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일 년간 지속한 코로나 사태 속에서 학교가 대부분의 전체 등교를 시작했다.

 학교 정문에 학생을 환영하는 ‘너희들이 와서 봄이다’라는 펼침막이 참 따뜻하다.

 그 봄들에게 경쟁의 교육을 강요할 것인가, 상생의 교육을 가르칠 것인가를 학교와 사회가 답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가정형편에 따른 학력, 정서, 생활, 건강 등의 손실과 격차 확대가 심각해 졌음이 보고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의 경쟁교육은 교육양극화를 더 이상 회복불가능 수준으로 고착시킬 위험이 있다.

 교육의 본질과 학교의 존재 이유는 ‘함께 성장하기’ 이다.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어른들의 배움터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기 존재감과 효능감을 통해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토대를 구축한다. 학교가 목표로 하는 ‘함께 성장’은 학교의 이러한 철학적 지향을 공유하고 그 철학적 지향을 시스템화한 교육과정 운영을 전제로 해야 한다. 학교는 모든 학생들에게 어떤 웅덩이도 피하지 않고 채우며 흐르는 강물이며 뱃길에 갈라진 흔적을 지우는 바다 같아야 한다. 모두에게 따뜻함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햇살이어야 한다. 학교가 그 길을 가게 하는 것이 교육 당국의 몫이다.

 케슬러의 강연에서 영감을 받은 P.크로포트킨은 자연 속에서의 수많은 관찰을 통하여 다양한 부류의 동물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다투고 몰살시키지만, 그와 동시에 같은 종이나 같은 집단에 속한 동물들끼리는 그러한 싸움과 몰살에 상응할 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서로 부양하고 도와주며 보호해줌을 실증적 사례로 주장했다. 그의 책 ‘만물은 서로 돕는다’에서 그는 이러한 사회성을 자연법칙이라고까지 했다.

 작은 풀꽃 하나도 큰 낙락장송과 같은 한 생명이다. 그 각각은 한 하늘을 나누어 받쳐 들고 있다. 어떤 봄도 차별 없이 그들을 찾는다. 그게 자연이고 자연법칙이다. 그 안에서 생태계가 어우러져 살아간다. 인간도 함께 어우러진다.

 교육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쟁에서 이긴 한 사람이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개발시대 레토릭에서 벗어날 때이다.

 모두를 위한 모두의 교육, 한 줄 세우기가 아닌 여러 평면과 공간에서 자기 자리를 잡도록 하는 교육으로 가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적응력과 다양한 상상력을 기르는 교육은 모두에게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아이들이 와서 학교가 봄이 되었다. 맞다. 아이들의 웃음이 쌀 튀밥 터지듯 해야 학교에 매화도, 목련도, 벚꽃도 핀다. 이 세상에 아이들 웃음만 한 봄은 없다. 그 웃음이 세상의 봄을 만든다. 어느 세상에 기죽은 꽃이 피겠는가? 아이들이 친구를 향해 주먹 쥐는 일이 없도록 하자. 봄 햇살을 손바닥에 받아들 듯 서로 손을 잡고 살아가게 하자. 줄 세우는 경쟁과 시기와 미움의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다. 사랑할 것들을 사랑하기에도 봄은 짧으니! 봄보다 더 따듯하게 봄꽃보다 더 향기롭게 서로 느끼게 하자. 온기와 향기가 가득한 교육, 어른들 몫이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

이항근<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교육위 설치지원 전문위원/前전주교육장·군산회현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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