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철저한 진상 규명이 먼저다
MB정부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철저한 진상 규명이 먼저다
  • 이원택 국회의원
  • 승인 2021.02.1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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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연구소가 세계문학 100대 작품 중 하나로 선정한 미국의 고전 소설 ‘모비딕’. 선장의 다리를 앗아간 향유고래를 추격하는 선장과 선원들의 이야기인 ‘모비딕’은 중·고교시절 늘 추천 도서 목록에 올랐던 소설이었다. 그런 ‘모비딕’이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가 민간인 사찰을 위해 서울대 앞에 만들었던 카페 이름으로 등장했다. 당시 보안사에서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은 정계, 노동계, 종교계 등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에 대한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파일을 공개했고, 이 사건은 2011년 영화 ‘모비딕’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우리의 일상이 어떤 조직, 어떤 기관에 의해 나도 모르게 시시콜콜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모비딕’을 통한 군부독재시대의 민간인 사찰이 영화속의 허구가 아니라, 10여년전 MB정권 국정원에서 이른바‘특명팀’ 등의 이름으로 존재하며, 실제로 민간인을 불법 사찰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국민에 대한 국가의 폭력이며, 묵과할 수 없는 중대 범죄다.

지난 1월 국정원은 모 시민단체의 불법사찰 문건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에 따라 당사자들에게 63건의 관련 문건을 발송했다. 이 문건 등을 통해 드러난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내용은 충격적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 국정원은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VIP 통치보좌는 물론 대정부 협조관계 구축 및 견제 차원에서 여야 국회의원에 대한 신상자료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민감한 사안인데다 민정수석실 직원들이 관련 자료들을 수시 축적·업데이트 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정원에서 보안유지하 국회의원 전원에 대한 신상자료를 관리해 주기를 요청’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 검찰과 경찰, 국세청까지 동원됐다고 한다. 이외에도 당시 국정원은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인들에 대한 사법처리에 속도를 내라고 검찰에 주문하기도 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방송사 프로그램은 광고 중단 등을 통해 중단시키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은 이미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통해 그 일부가 드러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검찰 수사는 진상규명 보다는 사건을 축소·은폐하기에 바빴고, 몸통을 규명하기보다는 꼬리자르기식 수사였다. 결국, 사건의 실체적 진실규명은 어려웠고 국민적 의혹은 해소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국정원과 기무사 등 국가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왔다. 기무사는 정원을 30%정도 줄이며 군사안보지원사령부(안보사)로 바뀌었고, 국정원은 국내정치 개입 가능성을 차단하고 정보기관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정원법도 개정됐다. 그러나 조직이 축소되고 법이 개정되었다고 해서 권력기관 개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들 권력기관들이 과거 정권에서 자행한 민간인 불법사찰 등에 대한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지게하고,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권력기관의 개혁이 온전히 추진될 수 있다.

이명박 정권 당시 국정원이 벌인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실체가 일부 공개되자 보수야당은 ‘보궐선거용 정치공작 운운’하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를 억압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선거의 유불리를 따지며 정치적으로 재단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이 얘기하는 정치공작이 아닐까.

서울대앞 ‘모비딕’카페의 실체가 드러난 지 30년이 지났다. 언제까지 ‘모비딕’의 망령을 지켜봐야 하나. 국정원 민간인 불법사찰의 철저한 진상규명이 시급한 이유다.

이원택<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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