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년을 한결같이 “전북 대표가 전국 대표다” 광진기계
[창간] 31년을 한결같이 “전북 대표가 전국 대표다” 광진기계
  • 김장천 기자
  • 승인 2019.11.2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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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났던 사람, 같이 일했던 사람과 사업을 해 성공해보겠다고 앞만 보고 달린 지 올해로 꼭 31년 됐습니다. 그동안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건설기계를 제작하고 있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전북도민일보도 창간 31주년을 맞아 묘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이제 입지·이립(立志, 而立, 뜻을 세우는 나이)에서 첫발을 뗀 전북도민일보에 축하와 함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아스팔트 살포기’를 제작, 대한민국을 넘어 해외시장까지 진출하고 있는 향토기업 ㈜광진기계(대표이사 장경환).

 광진기계에서 생산하고 있는 아스팔트 살포기는 ‘뷰다(BEAUDA) 시리즈’다. 뷰다 시리즈는 모두 트럭에 아스팔트 살포기를 부착한 것이 특징이다. 트럭은 일반 차량이지만, 여기에 아스팔트 살포기를 부착하면 ‘건설기계’로 용도가 바뀐다.

 광진기계에서 생산하는 뷰다 시리즈는 사용 용도에 따라 다양하다.

 우선, 뷰다 15PN은 1톤 차량에 적용돼 도로의 소포장이나 부분 복구 등에 사용된다. 이밖에 2.5톤, 3.5 차량, 7톤 차량에 적용되는 뷰다 시리즈에는 차량 크기에 따라 아스팔트 용량을 2,000~8,000ℓ까지 담을 수 있다.

 특히 7톤 차량(8,000ℓ 탱크)에 적용된 뷰다 70T는 몽골로 수출돼 도로포장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광진기계 장경환 대표가 아스팔트 살포기의 내부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최광복 기자
광진기계 장경환 대표가 아스팔트 살포기의 내부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최광복 기자

 장 대표는 “뷰다 시리즈는 광진기계의 ‘정석과 정식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다”며 “고객에게 최선의 만족을 줄 수 있도록 모든 직원이 힘을 뭉치고 있다”고 말했다.

 전북지역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건설기계 제작에 뛰어들어 국내 유일의 ‘아스팔트 살포기’제조업체에 이름을 올린 장 대표에게 있어 1988년의 의미는 남다르다.

 전주공업고득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일을 했던 장 대표는 ‘기술인’ 삶을 접고, 동원산업에 입사해 원양어선을 타기로 했다.

 “그때가 아마 1988년 봄으로 기억한다. 다음 날 원양어선을 타고자 부산 용두산에 있었는데 덜컥 겁이 났다. 수영도 못하는 데다 흔히 ‘기름 밥’을 먹었던 녀석이 배를 탄다는 것에 회의감도 들었다”고 장 대표는 당시를 회상했다.

 배 타기를 포기한 그는 같이 일했던 지인들과 힘을 합쳐 회사를 설립했다. 이때가 1988년 10월이다.

 건설기계 정비를 중심으로 회사를 꾸려갔던 장 대표는 2000년대에 들어서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건설기계 정비를 벗어나 직접 제작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

 처음 회사 자본금 50만원, 직원 수 5~10명으로 출발했던 광진기계는 ‘아스팔트 살포기’ 제작에 성공한 것도 이 시기다. 뷰다 1호기와 관련한 실용신안, 발명특허만 해도 10여 개에 이른다.

 그는 “건설기계를 만들어 보겠다고 하니 ‘미친놈’ 소리도 많이 들었다. ‘정비기술이 있으니 특장차나 만들어 보라’는 비아냥은 덤이었다. 뷰다 1호기 제작에 성공했을 때는 정말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2~3개월 구상단계와 제작하기까지 3년 정도 소요됐다. 정비를 하면서 번 돈은 모두 쏟아 부었다. 그리고 2005년 중소기업청의 ‘기술혁신사업 선정’에 이어 2007년 국토해양부로부터 ‘건설기계제작·조립사’로 지정됐다”고 담담히 뱉어냈다.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장 대표에게도 시련은 닥쳤다. 건설기계 제작에 성공을 맛본 그는 2007년 건설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상황은 녹녹치 않아 회사를 넘기는 상황에 이르렀다. “2007년 전후는 정말 힘들었다. 집에 가져갈 돈은 한 푼도 없고, 있던 땅마저 팔아야 했다. 너무 힘겨울 때면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기억했다.

 마음을 다시 고쳐잡은 아스팔트 살포기에 올인,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기술인’으로써 자존심이 크게 작용했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2007년 12월 국토해양부로부터 건설기계 제작·조립사로 지정 받았다. 이때부터 사업은 탄력을 받았고, 아스팔트 살포기뿐만 아니라 롤러, 천공기 제작에도 성과를 보였다.

 그야말로 ‘도전→극복→또다시 도전→극복’의 연속이었다. 장 대표는 “31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정말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지만 ‘기술인’이라는 자부심과 열정으로 버티고, 이겨낸 것 같다”며 “똑같은 나이를 먹은 전북도민일보도 전북을 넘어 대한민국 대표 지역언론사로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이웃돕기도 적극적이다. 로타리틀럽 전북지구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그는 결식아동돕기, 장학금 지원, 어린이재단 후원 등을 펼치고 있다.

 장 대표는 “재물 욕심이 있으면, 기술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 그러나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을 안겨준다”며 “내가 아닌 우리라는 신념을 사회와 공존하고, 서로 정을 느끼며, 자만하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장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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