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탄신일과 청렴
충무공 탄신일과 청렴
  • 방태경
  • 승인 2019.04.2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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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오는 4월 28일은 법정기념일 중 하나인 ‘충무공 탄신일’로써 충무공의 높은 충의를 길이 빛내고, 후손들에게 자주자립·정의·애국·애민·창조 정신을 심어 주기 위해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인 1545년 4월 28일을 기념해 제정되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의 왜침을 막아낸 조선 중기의 명장으로, 1576년(선조 9) 32세의 나이에 식년무과 병과로 급제한 뒤 함경도 변방의 동구비보 권관을 시작으로 훈련원 봉사, 사복시 주부, 조산보 만호, 정읍 현감 등을 차례로 역임하다 1591년 2월 서애 류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발탁되었다.

 이후 일본의 침략을 대비하여 군사 조련,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 제조, 진지 보수 등에 힘썼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연전연승 눈부신 전과를 거두었다. 이순신은 옥포대첩, 한산도대첩, 부산포해전을 치르며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으나 모함으로 파직 당하고, 이후 복권되어 명량대첩에서 대승을 거둔 뒤 노량에 집결한 일본군과 혼전을 벌이다가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위대한 업적만큼이나 청렴한 삶을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훈련원 감독관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병조정랑(정5품) 서익이 자신의 친지를 특진시켜 달라고 찾아온 일이 있었는데, 그는 뚜렷한 공로도 없이 승진하는 건 국가 법도에 어긋나며 응당 승진해야 할 사람이 승진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며 거절하였다.

 한번은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성박이 거문고를 만들고자 객사 뜰앞의 오동나무를 베라고 하자 이 나무는 나라의 것이니 사사로이 벨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청렴한 행동으로 상을 받기는커녕 이 일로 오히려 파직을 당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대학자 유성룡이 찾아와 이율곡을 만나 사정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였으나 이순신은 상급자에게 부정한 청탁이라며 이 또한 거절했다.

 이처럼, 이순신 장군은 공직자로서 소신을 가지고 청렴한 삶을 살았다. 난중일기 중 ‘장부로서 세상에 태어나 나라에 쓰이면 죽기로써 최선을 다할 것이며 쓰이지 않으면 들에서 농사짓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내용은 이러한 이순신 장군의 강직한 소신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청렴을 그 어느 시대보다 강조하고 있다.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청렴을 강조했다는 것은 청렴하지 않은 공직자가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공직자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개인의 이해나 관심에 따라 직무수행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되고,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이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올해 1월 공공기관 부패에 대한 전문가의 인식을 반영한 2018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57점을 받았다. 전년보다 3점 오른 역대 최고 점수이나, 국가별 순위는 180개국 중 45위에 그쳤고, OECD 회원 36개국들과 비교하면 30위로 최하위권에 그쳤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발표한 ‘2018년 부패인식도 조사’결과에서도 ‘우리 사회가 청렴하다’는 공무원의 응답은 52.3%인 반면, 국민들은 7.5%에 불과, 국민과 공무원간 인식의 차이가 존재함을 보여줬다. 우리나라가 외형적으로 급격히 성장을 이루었지만 진정한 청렴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내실을 다져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하다.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쌓여 연못이 된다’는 뜻의 적수성연(積水成淵)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당장 극적인 청렴 인식 향상은 어려우나 청렴함과 강직함, 기본과 원칙을 기반으로 한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본받고 공직자 개개인이 작은 것부터 청렴문화를 실천한다면 우리 사회가 자연스레 맑고(淸) 깨끗한(廉) ‘청렴연못’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호남지방통계청 전주사무소장 방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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