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 이용숙
  • 승인 2015.03.17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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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식탁에서 쑥국을 마주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맛보는 상큼하고 알싸한 향이 일품이다. 엊그제까지 봄나물로는 냉이가 주인이었는데, 그새 꽃이 피고 그러면 옹이가 박혀 더는 먹을 수 없게 된다. 곧이어 달래와 취나물 봄미나리가 식탁을 이어받을 것이다.

3月, 설렘 속에 학교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설레다’는 말은 어딘가 불안정하고 마음이 공연히 흔들린다는 뜻인데, 그 속에는 묘한 떨림과 행운에 대한 기대까지도 뒤섞여 있다. 두어 해 전 교단을 마감하기 전까지 참 많은 3月을 맞고 보냈었다. 근속 기간 43년 6개월이니 마흔 번 가까이 설렘을 겪은 것이다.

그 때마다 새 인연과 만났고 그 때마다 불안 초조와 함께 기대와 꿈이 교차했다.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한량없는 은혜를 느낀다. 한편으로 어설프고 설익은, 때로 무성의하고 불성실한 처신에 부끄러워하고 죄스러움을 지을 수 없다. 그래 정년 기념으로 후배 교수들이 엮어준 시선집 표제를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로 진솔하게 엮었다.
 

P군, 정말 미안하구나 

정년을 앞두고 대학과 후배 교수들 주선으로‘정년기념특강’을 준비한 적이 있다. 다행이(?)도 그날 초대형 태풍 볼라벤이 전 국토를 할퀴고 간 덕에 어색한 자리는 모면할 수 있었다. 어쩌면 마흔네 해 동안의 인연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중학교와 고등학교, 전문대학과 정규대학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을.

그날 행사 서두에서는 P군에게 사죄하는 고백을 먼저 할 생각이었는데 아쉽다. P군, 그는 나의 전 교단 경력 중 유일하게 나로 인해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친구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퇴학을 다룬 내용이 있어 더욱 부끄럽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던가.

그의 고2 시절, 겨울 방학이 끝나고 2월 학기말 개학 중 일이었다. 휴가기간에 음주·사복 착용·영화 관람 등으로 학생부에 적발되어, 그 조치를 논의하는 도중이었다. 참 그때는 그랬었다. 음주 흡연은 물론 학생이 교복이 아닌 사복만 입어도, 학교에서 학기에 두어 번 단체관람이 아니면 영화관 출입도 무조건 교칙 위반이었다.

무슨 연유였는지 그는 그날 몹시 흥분했고, 교사의 몇 마디 질책에 광기가 폭발했다. 대낮에 깡소주를 두어 병 마시고, 그리고 식칼을 들고 온 학교를 누비면서 난동을 부렸었다. 나 또한 두려움에 쩔쩔맨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차분하게 진정시키고 달래지 못한 건 숫제 담임인 내 탓이었다. 어쩌면 나에 대한 반감일지도 모르는 일, 내가 앞서 처벌을 주장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선도하지 못한 내 탓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학업을 포기했고 오늘까지도 연락이 두절되었다. 어쩌다 주변인들로부터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 있지만, 언젠가 만나면 진심으로 사고하고 싶다.
 

천상천하에 오직 ‘나’ 하나만

지금껏 살아오며 생각해 보면, 천상천하에 가장 소중한 것은 오직‘나’하나뿐이다. 부모도 형제도 처자도 아닌 나인 것이다. 하여 나란 누구이며 무엇인가. 이는 유사 이래로 최대의 철학적·종교적·예술적 질문이었다. 나는 현상의 나는 물론 아니고, 학력이나 지위·권세·재력·외모도 아니고, 무엇일까.

그런데‘나’는 우주 삼라만상 삼천대천세계와 관계지어 있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이요 아들에게는 아버지, 형에게는 아우요 아우에게는 형이다. 삼촌에게 조카, 당숙에게 당질, 할아버지에게는 손자, 외숙에게는 생질이지만, 그 역도 마찬가지다. 결국, 나와 관련되지 않은 존재란 결코 단 하나도 없다. 이것이 곧 인도의 「본생경」이 밝힌 인드라망 우주관이다.

사람은 물론 천지의 일체 존재, 곧 삼라만상이 모두 나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천지·부모·동포·법률, 그 중 천지에 해와 달과 별도, 풀과 나무와 꽃도 일체가 나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자연을 지키고 보존하고 생육시키는 일은 결국 나를 살리는‘생명운동’인 것이다.

40년 넘게 만났던 제자들, 그 중 누가 제일 소중한가. 착하고 예쁘고 영리하고 진취적인 학생,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존재가 있을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그 교단에서 내가 바친 열정만큼 정성과 진실, 순수와 헌신만큼 큰 것은 없다. 내가 바친 꼭 그만큼만 내게 되돌아온 것이다. 그러니 결국은 내가 가장 소중한 존재 아닌가.

잔잔하게 담담하게 삶을 가꾸어야겠다. 세상은 온통 은혜의 덩어리. 늘 고마워하면서, 그리고 미안해하면서 겸허하게. 날마다 새롭게 그러면서 설렘으로 맞이해야지.

다음 주 3월 24일은 木月 스승님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가르침 따라 하고 싶은 말도 6할이나 7할만 드러내고. 선생의 시 <나>의 마지막 구절처럼 살고 싶다. “아, 머언 곳에서 그윽히 / 향기를 머금고 싶다.

이용숙<시인·전주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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