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舜)임금에게서 관계를 배우다
순(舜)임금에게서 관계를 배우다
  • 임규정
  • 승인 2015.03.0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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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서양은 개인 중심의 사회고 동양은 관계 중심의 사회라고 일컬어진다. 많은 관계 중에서도 특히 효(孝)는 동양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 되어왔다. 일흔의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부모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는 노래자를 비롯하여, 아픈 어머니가 죽순이 먹고 싶다고 하자 한겨울에 산에 올라 죽순을 구했다던 맹종, 또 자신을 구박하던 계모를 아버지가 내쫓으려 하자 울며 아버지를 만류했다던 민손 등 효와 관련된 고사들이 널리 알려진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효가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반증한다.

그중에서도 효자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바로 순(舜)이라 할 수 있겠다. 고수라는 눈 먼 사내가 봉황이 나오는 꿈을 꾸고서 낳았다는 순은,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계모와 함께 살았다. 계모는 고수와의 사이에 상(象)이라는 아들과 과수라는 딸을 하나 두었다. 이 가족에서 순은 언제나 외톨이였는데, 계모는 질투가 심하고 이기적인 여자로 자신의 아들만을 아꼈으며 고수는 어리석은 자라 후처의 말만 믿었다. 이복동생인 상은 성질이 못되기로 유명하여 사사건건 순을 괴롭히고, 과수는 순을 괴롭히지는 않았으나 적극적으로 순을 옹호하지도 않았던 모양인지 전해지는 바가 많지 않다. 계모는 매일같이 순에게 회초리를 들었으며, 끝내는 순을 죽여야만 자신의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순은 결국 집에서 쫓겨나 초가를 한 칸 지어 옹색하게 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순은 진심을 다해 부모를 모셨고, 근동에 그의 효성이 널리 퍼지게 된다.

그때가 마침 요임금이 왕의 자리를 넘겨줄 후계를 찾던 시기라, 신하들이 모두 요에게 순을 추천하였고, 요는 두 딸을 순에게 시집보내고 재산과 사람을 내려 순이 어떤 자인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순은 곧바로 아내들을 데리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재산을 나누고자 하였으나, 초가에 옹색하게 살던 순이 갑자기 많은 재산과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게 되니 순의 가족들은 질투심에 타올랐다. 이들은 순을 죽이고 재산과 아내를 빼앗기 위한 계략을 마련한다. 이후 이들은 차마 인간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을 자행하는데, 순에게 곡식 창고를 수리하라고 창고 속에 들어가게 한 뒤 순이 있는 창고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우물을 청소하라고 우물 속에 들어가게 한 뒤 밧줄을 끊어 버리고 우물을 메우기도 했으며, 술을 잔뜩 마시게 해 취한 순을 직접 죽이려고까지 한다. 그러나 순은 아내들의 도움으로 이 많은 시련에서 살아남았고, 그 이후에도 한결같이 동생을 아끼고 부모를 공경했기에 가족도 마침내 그에게 감화 받아 잘못을 뉘우치고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순의 고사는 효의 본질을 명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효의 기본 정신이 무엇보다도 부모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진정한 효라면 순은 아주 이른 나이에 자살을 했어야 한다. 순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 까닭은 첫째로 부모를 자식이 먼저 죽은 사람으로 만들 수 없어서요, 둘째로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이기 때문이다. 효의 근본은 여기에 있다. 부모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부모에게 옳은 일을 하는 것이 효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그의 부모가 끝내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순의 효를 더욱 빛나게 한다. 순의 공경과 올곧음이 부모가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한 것이다.

동양에서 효는 모든 관계의 근간이 된다. 그것은 누구라도 부모를 가지기 때문이다.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없을 수 있지만, 모두가 부모는 반드시 가진다. 그리하여 이 관계에서의 덕목인 효가 모든 관계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순의 고사가 효를 넘어 오늘날 우리의 모든 관계를 다시 성찰하게 하는 이유다. 우리는 자극과 그 충족을 목표로 하는 세상에 산다. 그것이 우리 관계가 자극과 충족을 기반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자극이 충족되면 좋은 관계고, 자극이 충족되지 않으면 혹은 부정적인 자극이 발생하면 나쁜 관계인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직언, 쓴소리가 없는 사회에 산다. 감정적 충족을 최전선에 내세우는 사회에서 옳음, 좋음의 문제는 뒤로 밀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모두에게 건강하지 않다. 순의 고사는 좋은 관계란 궁극적으로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 각자가 모두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것이, 직언을 아끼지 않는 관계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까닭이다!

 임규정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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