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시대에 서서
불멸의 시대에 서서
  • 임규정
  • 승인 2015.01.2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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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약 세 시간 거리에, 중국 천 년의 고도, 시안(西安)이 있다. 시안은 그 유구한 세월만큼이나 볼 것도, 배울 것도 많은 도시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것은 진시황릉의 병마용갱일 것이다. 병마용갱을 보면 크게 두 번 놀라게 된다고 하는데, 한 번은 실제 사람 크기에 비견할 만큼 커다란 병사의 크기에 압도당한다는 것이요, 다른 한 번은 병사가 약 8000여점이 놓여있는 그 거대함에 입이 쩍 벌어진다는 것이다. 개개의 병사들에서 한 번, 전체의 거대함에서 한번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이 압도적인 전사군단은 바로 황제 진시황의 무덤을 지키는 자들이라 한다.

진시황이 누구인가? 그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의 왕으로, 중국 최초로 황제라는 호칭을 사용한 인물이다. 진시황의 악행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언급할 수 있겠으나, 그 무엇보다도 진시황이 오늘날의 중국이 성립하도록 하는 가장 기본적인 발판을 다진 인물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통일 이후 중국 전역에 걸쳐 수레바퀴 사이의 간격을 표준화하고 문자, 도량형, 화폐를 통일하는 등, 오랜 시간 서로 다른 나라를 구축하고 살아오던 중국 대륙의 다양한 문화를 명실공히 중국 문화로 탈바꿈시킨 인물이다. 이렇듯 업적을 많이 이룬 만큼이나 진시황은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손에 쥔 것이 많을수록 죽음이 두려운 법이다. 진시황은 자신의 영광을 영원토록 이어가고 싶어했고, 저 거대한 병마용갱은 사후에도 영화를 누리고자 했던 진시황의 야심을 반증한다. 이 야심의 정점에 불로초가 있다. 진시황은 불멸을 꿈꿨고, 노생에게, 또 서복에게 불로초를 구해오라는 임무를 수여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불멸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시안 어딘가의 진시황릉에 잠들어 있다.

진시황이 오늘을 본다면, 그의 꿈이 어떤 의미에서는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불멸의 시대, 진시황이 꿈에 그리던 시대에 살고 있다. 인류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전환시킨 인터넷은 불멸을 창조했다. 그것은 신체의 불멸도 아니요, 영혼의 불멸도 아니다. 그것은 흔적의 불멸이다. 한번 인터넷에 올라온 글은 영원토록 남아 네트워크를 떠돈다. 그것은 글을 남긴 이가 원치 않더라도, 심지어 죽더라도 남아 있다. 글을 쓴 이가 삭제하더라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남아서 사이버 공간을 떠도는 경우가 태반이다. 인터넷이 존재하는 한, 우리의 흔적은 영원토록 남아있게 된다. 그것이 이 시대, 우리의 불멸이다.

 2014년 유럽에서는 잊혀질 권리가 화두였다. 스페인의 마리오 곤잘레스는 채무 불이행자였고, 그 문제를 모두 해결했음에도 여전히 채무자로 검색된다며 구글에서 과거의 문제를 담은 링크를 제거하기 위해 유럽 최고법원(ECJ)에 소송을 제기했다. ECJ는 잊혀질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판결내렸고, 이제 유럽 시민이 구글에 잊혀질 권리를 요구하면 구글은 이를 수용해야 한다. 문제는 유럽 내의 구글을 제외한 구글 사이트에서는 여전히 동일한 검색 결과가 노출된다는 점이다. ECJ의 판결은 오직 유럽 내에서의 잊혀질 권리만 보장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잊혀지고 싶은 원래의 글은 여전히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보장도, 현재로서는 그 흔적으로의 길을 잠시 끊어주는 것에 불과하다.

언제나 논의되는 주제건만, 인터넷에 순기능만큼이나 역기능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이는 드물다. 인터넷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흔적을 영원토록 남겨둔다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물론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인터넷 공간에는 변화하지 않은 과거의 우리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 그것은 때로 긍정적 변화를 막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인터넷에 한번 올라간 글은 공공재가 된다. 그것은 글을 쓴 이가 원하는가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 인터넷에 한번 등록된 글을 쓰지 않은 상태로 되돌리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우리가, 특히, 키보드 앞에서, 더욱 신중해져야 하는 이유이다.

 임규정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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