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지기 <184>그까짓 엉덩이가 대수겄소
가루지기 <184>그까짓 엉덩이가 대수겄소
  • 최정주 글,고현정 그림
  • 승인 2012.06.24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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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해는 져서 어두운데 <8>

"남녀가 유별헌디, 그럴 수가 있소?"

"나넌 괜찮소. 그런 것얼 따질 형편도 아니고라우."

옥녀가 이불 위에 털썩 몸뚱이를 내려놓았다. 두목이 잠시 서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화주라도 마시는지 이내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흐참, 도둑같지도 않은 도둑들이 산채를 지키고 있구만이. 이것 괜히 좋다가 만 것언 아닐랑가? 김치국부텀 마신 것언 아닐랑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몸을 누이려던 옥녀가 살며시 일어나 사내들이 빤히 내다보이는 입구 쪽으로 가서 쪼글트리고 앉았다. 나중에 사내들이 동굴 속으로 잠을 자러 들어오면 어느 놈 곁에 누울까, 미리 점을 찍어 놓기 위해서였다. 불빛 속에 보이는 사내들은 모두가 고만고만했다. 하나도 특별히 잘나보이는 사내는 없었다. 수염이 유난히 덥수룩한 사내 하나가 자꾸만 동굴을 흘끔거리는 모습이 보일 뿐, 다른 사내들은 이 쪽에 관심도 없어보였다. 화주가 두어 순배 더 돌았을 때였다. 사내 하나가 슬며시 일어나 서너 걸음 걸어가더니, 주위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바지춤을 내리고 소피를 보았다. 그러자 옥녀도 느닷없이 아랫배가 더부룩히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옥녀가 동굴을 나갔다.

"왜요? 아짐씨. 잠이 안 오요? 흐긴, 그럴 것이요. 사내덜도 잠자리가 바뀌면 잠이 안 오는 법인디, 여자인 아짐씨야 오죽허겄소?"

두목이 돌아보고 말했다.

"그것이 아니라 소피가 매려워서요."

"아, 그래요? 적당헌 아무디서나 보시씨요. 여그넌 아짐씨의 엉뎅이럴 훔쳐 볼 놈언 없응깨요."

"봐도 괜찮소. 이따가 잠꺼정 함께 잘 양반들인디, 그까짓 엉덩이가 대수겄소?"

무심히 대꾸하고는 옥녀가 동굴 뒤쪽으로 돌아가 치마를 올리고 속곳을 내렸다. 쪼글트리고 앉아 볼 일을 보면서 가만히 바라보았으나 이 쪽을 흘끔거리는 사내는 없었다.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 뿐이었다. 하긴, 두목의 눈치를 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 주무실라요? 내 눈치 보지말고 잠 오먼 들어와서 잠덜 자씨요이."

옥녀가 한 마디 남겨놓고 동굴로 들어왔다. 딱히 곁에 누이고 싶은 사내도 눈에 띄지 않아 제 놈들이 하는 꼴을 지켜나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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