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예산 ‘싹둑’…농정개혁 포기했나?
농업예산 ‘싹둑’…농정개혁 포기했나?
  • 김종회
  • 승인 2018.06.27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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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뒤가 맞다. 조리(條理) 있다. 수미일관(首尾一貫)하다. 말이나 글,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일을 해 나간다는 뜻이다.

 이의 반대말은 시작은 있는데 두서가 없다. 끝이 없다는 유시무종(有時無終), 머리는 있는데 꼬리가 없다는 유두무미(有頭無尾) 등이 있다.

 처음과 끝이 변함이 없어야,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믿음이 간다.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와 안보, 소통 분야에서 탁월한 국정운영 능력을 선보였다. 말과 행동이 같았다. 수미일관했다. 예측 가능한 순리의 정치를 펼쳤다.

 그렇지만 농정분야에서는 말과 행동이 달랐다. 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개헌 정족수 미달로 폐기)에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담은 조항이 신설됐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어업·농어촌의 공익적 기능을 제고하여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안전한 식량공급을 보장한다’는 조문이다. 또 기존 농업 조문에 ‘농어업·농어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농어민의 소득증대 및 권익신장’이란 내용도 추가됐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농업을 직접 챙기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문 정부가 출범 후 처음 세운 2018년도 예산에서 농업 예산 증가율은 국가 예산 증가율에 한참 미달했다. 일자리 창출과 민생 등 우선순위가 앞서는 분야가 있어서, 취임 이후 처음 짜는 예산이라서 미처 농업을 챙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농업계는 자신을 위로했다.

 이런 상황인지라 2019년도 농업예산에 대한 기대는 매우 컸다. 그렇지만 기대는 큰 실망으로 바뀌었다. ‘농업홀대’를 넘어 ‘농업 패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2019년도 분야별 예산 요구 현황’에 따르면 내년도 농림·수산·식품 분야 예산은 올해 예산(19조7,000억원)보다 4.1%(8,000억원)나 줄어든 18조9,000억원이다. 국가 전체 예산 요구액은 458조1,000억원으로 2018년 대비 6.8% 늘었지만 농림·수산·식품 분야 예산은 뒷걸음질쳤다.

 분야별 예산 요구액을 보면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153조7,000억원으로 올해(144조7,000억원)보다 6.3%, 교육분야는 71조3,000억원으로 11.2%, 국방분야는 46조8,000억원으로 8.4% 각각 증가했다.

 믿는 도끼에 찍힌 발등은 더 아프다. 맞은 데 또 얻어터지면 더 아픈 법이다. 농업분야에 대한 푸대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믿었던 문 정부에서조차 기조에 변함이 없어 아물지 않은 상처가 더 쓰라리다.

 문 정부는 지난해에도 ‘2018년도 분야별 예산 요구 현황’에서 농림·수산·식품 분야 예산을 19조3,000억원 편성, 2017년 예산(19조6,000억원)보다 3,000억원(1.6%)이나 쳐냈다. 농업계가 강하게 반발하자 국회가 심의과정에서 농업예산을 19조7,000억원으로 늘렸다. 2017년보다 늘어난 2018년도 예산은 겨우 1,000억원에 불과했다. 다른 분야 예산 증가율과 비교하면 사실상 후퇴다.

 최근 5년간(2014~2018년)만 되돌아봐도 국가 전체 예산은 한해 평균 4.6% 증가한 데 비해 농식품부 예산은 평균 1.38% 늘어나는 데 그쳤다. 비중도 줄었다.

 개혁은 힘 있을 때 추진할 수 있다. 2019년은 그동안의 ‘땜질식 농정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농정 대전환의 실질적 원년이 돼야 한다는 게 농업계의 일관된 요구다. 이를 실현하려면 예산의 확충과 지원은 필수다. ‘적폐와의 전쟁’에서 보여준 문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력과 강단을 농정분야에서도 보여 달라는 농업계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길 당부한다.

 농정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솔직하게 고백하는 편이 낫다. 그래야 농민의 쓰라림이 조금이라도 완화될 수 있다. 상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믿었던 도끼를 내려놓으면 발등 찍힐 일도 없다.

 김종회<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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