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의원 폭행사건과 정치인의 ‘책임윤리’
김성태 의원 폭행사건과 정치인의 ‘책임윤리’
  • 조배숙
  • 승인 2018.05.0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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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던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5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한 시민에게 폭행당했다. 연휴 기간 동안 폭행 현장을 찍은 동영상이 돌아다닐 정도로 국민들의 관심을 모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가 ‘보수 우파를 가장하여’ 저지른 테러라고 비난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유감 표명과 함께 자유한국당에 대해 국회정상화를 촉구했다.

 유감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갈등을 무력으로 해결하는 것을 막고 말과 제도로 해결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정치라는 점에서, 정치를 둘러싼 모든 폭력사태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 정치인에 대한 폭력은 사회적 갈등이 정치로 풀리지 않을 때 발생하곤 했다. 2011년 8월 정동영 의원은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값 등록금 집회에 참석했다가 “민주당 빨갱이 죽여버리겠다”고 주장하는 한 여성에게 폭행당한 적이 있으며, 같은 해 11월 박원순 서울시장도 동일인에게 “빨갱이”소리를 들으며 맞은 사건이 있었다.

 2011년이 어떤 해였던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이듬해였던 그 해 무상급식을 반대한 서울시장이 주민투표 불발로 사퇴한 뒤, 정부 여당은 야당을 상대로 색깔 공세를 퍼붓던 시기였다. 정부여당이 정치를 실종시키자 야당은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장외는 공권력이 공정하게 적용되지 않아 언제든 일방적인 폭력이 발생할 수 있던 때였다. 실제로 당시 경찰은 정동영 의원을 폭행한 범인을 신원조회조차 없이 풀어주기까지 했었으니, 정치도 공권력도 폭력을 부추겼다고밖에 볼 수 없는 암흑기였다.

 정치와 폭력의 관계를 조금 더 진전시켜 생각해보자. 자유한국당은 이번 김성태 의원이 당한 폭행에 대해 ‘테러’라고 표현했다. 테러는 상대방에게 심리적 공포를 유발시켜 말과 행동을 위축시키려는 목적으로 벌이는 폭력이다. 범인과 배후에 대해서는 경찰의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하겠지만, 현재까지 자유한국당 당원이라고 주장한 한 사람의 돌출행동으로 보이는 폭행으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정치행위가 위축될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정치인에게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 자행되는 테러는, 개인이 저지른 돌출적인 폭행보다는 다른 부문에서 나타난다. 문자 폭탄과 댓글 공작이 그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의결에 앞서 대부분 국민의당 의원들은 무지막지한 문자 폭탄에 시달렸다. 당시 모든 야당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해 미적거릴 때 어느 정당보다 먼저 대통령 탄핵을 당론으로 확정했던 국민의당이었지만, 특정 당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을 피하지는 못했다. 탄핵소추안 발의 날짜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던 그 며칠 간 국민의당 소속 의원들이 문자 폭탄으로 받은 상처는 잊기 어려울 정도였다. 당 대표를 맡고 있던 박지원 의원은 하루 수천 건이 넘는 비난 문자가 왔고,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욕설을 숱하게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댓글 공작 또한 마찬가지다. 경찰은 드루킹 조직이 2만 건이 넘는 댓글을 올렸다고 밝혔다. 드루킹의 댓글 조작 시기와 목적은 더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현재까지 수사당국이 밝히고 있지 않은 댓글 내용에 폭력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도 중요하게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국정원이 중심이 된 댓글조작에는 야당 인사들에 대한 색깔 공세와 인신공격이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며, 이는 정치인과 그 지지자에 대한 테러라고 불러야 마땅한 짓이었다. 드루킹 댓글에도 정치인에 대한 흑색선전이 포함돼 있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뜻이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에서 정치인의 윤리를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로 구분했다. 신념윤리는 하나의 대의에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태도를 의미하며, 책임윤리는 자신 행동의 결과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세를 의미한다.

 지금은 정치인들의 신념윤리만 판치는 것이 아닌지 냉정하게 짚어볼 시점이다. 정치인들이 신념윤리만 쫓는다면 서로 충돌은 불가피하고, 정치가 파행될 공산이 크다. 정치가 사라진 곳에서는 반드시 폭력이 자라난다. 더욱이 정치인들이 지지자들을 부추긴다면 물리적 언어적 폭력은 더욱 거칠어질 것이다. 베버의 말처럼 정치인은 신념윤리와 함께 결과에 책임을 지는 책임윤리를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 오늘의 폭행은 신념윤리만 쫓던 정치인들이 만든 결과이다. 정치인이 받은 폭행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업자득인 면이 있다. 이제라도 국회를 열어야 한다. 정치를 복귀시켜 폭력을 지우는 것이 지금 정치인이 탑재해야 할 책임윤리이기 때문이다.

 조배숙<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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