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중심적 선진국 담론 깨뜨릴 ‘선진국의 탄생’
서구 중심적 선진국 담론 깨뜨릴 ‘선진국의 탄생’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8.04.2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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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이후부터 21세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으로 나타난 담론. 기승전 ‘선진국’으로 귀결되는 서구 중심주의와 발전주의적 세계관의 계보를 흥미롭게 추적한 책이 나왔다.

 전주 출생의 사회학자인 김종태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인문한국(HK) 연구 교수가 박정희 시대 이래 한국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 인식의 틀인 선진국 담론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를 해체하자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새 책 ‘선진국의 탄생: 한국의 서구 중심 담론과 발전의 계보학(돌베게·1만7,000원)’은 ‘선진국’이라는 말이 정치, 경제, 사회 체제를 지탱하는 절대 명제로 자리하게 됐는지를 설득력 있게 분석하고 있다.

 수십 년째 선진국 문턱 혹은 갈림길에 서 있는 ‘국민 소득 3만 불 국가’라는 한국의 지상 목표인 ‘선진국 담론’이 등장한 배경과 이 담론이 사회·경제적 맥락에 따라 꾸준히 변화해 온 양상을 추적한 최초의 사회적 성과인 것이다.

 먼저, 서론인 ‘선진국 담론이란 무엇인가?’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개념의 의미와 그 사회적 역할을 개괄하면서, 이 두 개념을 중심으로 한국의 선진국 담론을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배경을 제시한다.

 1부 ‘문명에서 발전으로: 1880~1950년대’에서는 서구 중심 세계관을 제공한 대표적 담론인 개화·문명 담론의 특징과 변화, 그리고 관계성을 살핀다. 서구의 힘과 그것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의 냉혹한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한국 사회의 모습과 일제 강점기 초의 근대 문명 담론,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문과 대중 매체에 반영된 담론 등이 형성된 과정과 그 의미가 구체화되는 것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미국과 서유럽의 국가들 그리고 일본이 물질·군사적으로는 조선(한국)에 앞섰을지라도, 한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양 문명의 정신·역사적 수준이 월등하다는 탈서구 중심의 문명 담론이 일제에게 식민 지배를 당하던 한국인들의 민족적 자긍심과 독립 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2부 ‘발전 담론의 부상과 현황: 1960년대~현재’에서는 본격적으로 한국 선진국 담론의 탄생과 변화의 과정을 밝힌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해 공업화와 산업화 중심의 경제성장을 주도했다. 앞선 일제강점기부터 이승만 정권 시기에 한국 사회의 패권 담론이었던 탈서구 문명 담론이 서구 중심의 발전 담론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비교하면서 서구를 중심에 둔 발전과 근대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한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문, 그러한 담론의 수용 과정이 잘 드러난 각종 매체의 기사를 풍부하게 분석해 선진국으로 대별되는 발전 담론의 정치적, 대중적 영향력이 증폭되는 과정을 설득력이 제시한다.

 이어 박정희 이후 전두환, 김영삼, 이명박 정권 시기의 대통령 연설문과 당시의 언론 보도를 중심으로, 개발 도상국 탈출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 고도 성장을 구가했던 시기의 선진국 담론이 어떻게 위기의식을 부추기며, 정치·사회적 수단이 됐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는 결론인 ‘발전주의 선진국을 넘어서’에서 이제 한국은 ‘각자가 행복한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심스레 제안한다. 기존의 선진국 담론이 발전주의자들,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정치인들의 선전수단에 가까웠다면, 이제 선진국 담론은 한국 사회 구성원 각각의 삶이 좀 더 구체적으로 행복해지기위한 방법을 찾는 폭넓은 논의의 마당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제는 더 발전하고, 더 성장하고, 더 경제적으로 팽창한 나라만을 꿈꾸는 선진국 바라기, 그 끝없는 질주를 끊어내야하지 않을까?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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