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야금과 기타의 연애담, ‘바람의 악사’
[리뷰] 가야금과 기타의 연애담, ‘바람의 악사’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8.04.2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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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 위, 예술가들은 그렇다. 마치 썸을 타고 있는 듯, 주거니 받거니 목소리를 통해, 악기를 통해, 몸짓을 통해 예술의 언어를 확장해간다.

 특히 이들의 무대가 그러했다. 가야금을 타는 백은선씨와 기타를 퉁기는 안태상씨의 조합은 그 어떤 연인들의 모습보다 달콤했고, 편안해 보였다.

 아마도 오랜 기간 함께 호흡을 맞춰왔기에,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음악적 교감을 이루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터다.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하며, 하나 둘씩 정리해 둔 창작곡들을 한데 모아 선보이기까지 걸린 10여 년의 세월. 그 기간만큼 단단히 여문 이들의 음악적 감성은 무방비 상태의 누군가를 촉촉하게 적시고 말았다.

 20일 오후 8시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바람의 악사’ 앨범 발매를 기념한 공연이 펼쳐졌다. 이날의 무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연주를 즐기는 보헤미안들과 교감할 수 있었던 특별한 여정이었다.

 갸야금과 기타, 두 악기의 앙상블을 중심으로 만만치 않은 내공의 악사(樂士)들이 펼쳐낸 향연은 변화무쌍하면서도 다채로웠다. 베이스와 바이올린, 드럼, 장구, 건반, 소리꾼의 구음은 바람처럼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객석의 모든 공기를 데우기 시작했다.

 이들 바람의 악사는 선과 선, 박자와 박자, 공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마치 대화를 하듯 연주를 풀어냈다. 백은선씨는 25현 가야금을 온몸으로 휘감으며 연주했고, 안태상씨는 그 누구보다 뜨겁게 기타를 끌어안았다.

 이미 퓨전그룹 오감도와 써니앙상블에서 호흡을 맞춘바 있는 두 예술가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여유롭게 무대를 매만지며 관객들로부터 충분한 공감을 샀다.

 이날 공연에서는 앨범에 수록된 전곡, 7곡이 차례로 연주됐다.

 첫 곡, ‘바람의 초대’는 설렘, 그 자체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베낭을 챙기는 기분이라고 할까? 가야금과 기타 연주로 경쾌하게 표현한 이 곡은 듣는 이들의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런가하면, ‘그들만의 여행’은 이별을 앞두고 떠나는 연인들의 슬픈 여행길을 표현해 ‘바람의 초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선물했다.

 열정적인 기타 연주에 가야금 리듬을 더한 ‘보헤미안’은 자유, 그 자체였다. 달빛이 아스라히 비춘 한옥 마당에서 춤을 추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가야금과 구음으로 표현한 ‘월하무’도 끈적한 매력이 그만이었다. 스코틀랜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영국 민요 ‘스카브로 페어’는 한국적 감성의 양념을 더해 가야금과 기타, 바이올린으로 구성된 연주곡으로 새롭게 태어나 뭇사람의 감성을 보듬었다.

 앨범의 타이틀 곡이자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 ‘바람의 악사’는 가야금으로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연주법을 보여줘 눈과 귀, 마음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여행의 묘미란,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의 세계를 동경하는 예술가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니, 여정의 마지막 순간이 순식간에 다가와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끝은 곧 시작이다. “언젠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음악을 하면서 자유롭게 세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백은선씨의 꿈을 쫓아, 이날 객석의 누군가도 자신만의 꿈을 갖게 됐으리라.

 지금도 바람의 악사들의 초대에 응한 관객들의 어깨와 발이 자유스럽게 움직이고 있던 공연장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당장이라도 베낭을 메고 떠나고 싶은 봄. 바람의 악사를 따라 나서는 길, 두근 거리는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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