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한 인성교육 사례 <8>
시를 통한 인성교육 사례 <8>
  • 김영관
  • 승인 2018.01.0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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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를 매며/ 장석남
 

 아무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 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이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 떠 있다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창비, 2001)

 

 

  ‘배를 매며’ 전문이다. 시치료의 과정은 정화-동화-조절의 단계를 통해 이뤄지는데, 조절 단계는 새로운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소통을 회복하기 위한 심리적 평형을 이루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경험을 재정의 하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상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데, 이 작품은 조절 단계에 제시하기에 적절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의 감정과 그로 인한 설렘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만이 아니라, 이처럼 우리의 삶이 항상 의도하는 대로 뜻하는 대로 살아가기 보다는 때로는 ‘들어오는 배에서 던져지는 밧줄을 잡는 것’처럼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무엇이, 결국 버리려한다고 버려지지 않는 ‘운명’과 같은 것이며, 다만 현재 놓은 상황을 탓하기 보다는 ‘온종일 울렁이며 떠 있는 배’처럼 지금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을 자칫 ‘운명에 대한 순응’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어 시 해석에 주의를 당부했다. 학생들에게 “자신에게 운명처럼 던져지는 밧줄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밧줄, 싫어하는 밧줄을 탓하기 보다는 어떻게 묶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학생1)

 “내가 밧줄을 받은 것조차 몰랐다.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학생2)

 “어려서부터 어른이 시키는 대로 모든 밧줄을 받기만 했다”(학생3)

 “어떤 밧줄이든 어떻게 묶느냐는 자신의 능력이다”(학생4)

 “그것이 차라리 운명이란 것이면 그냥 받아 들였을 텐데, 그 때는 그런 것인 줄 몰랐었다.”(학생5)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는 않지만, 이 시를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게 던져진 ‘밧줄’은 모두 다 좋은 ‘밧줄’은 아니었다.”(학생6)

 

 등의 반응을 보였다. 청소년기 특성 가운데 하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해 대체로 불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야만 억눌린 감정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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