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이타의 서원으로 독공에 든 수행자의 모습
자리이타의 서원으로 독공에 든 수행자의 모습
  • 김동수
  • 승인 2017.08.1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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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50. 이형구(李亨求: 1955-)
  전북 순창 출신. 전북대 법과대학원 졸업(법학박사). 2001년 계간 <<공무원문학>> 가을호에 시 <세월>외 2편이 당선되어 등단. 전주지방법원 집행관을 역임하고 이후 한국문인협회와 국제펜클럽 전북지부, 공무원 문인협회 등 문단에서 활동. 시집 <<곁에 두고 싶은 사랑>>(2008)과 <<갯바람은 독공 중>>(2013) 등이 있으며 현재 (사)한국미래문화연구원장과 (사)생활법률문화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창문 너머/ 가로등이 꾸벅거린다// 밤이 깊었나/ 작은 바람결에/ 가늘게 들려오는 소리//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린다// 환상 속 하얀 그림자/ 들판 위에서 홀로 뒤척거린다. -<정말 그리운 것일까> 전문, 2008

 

  당신이 그리울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당신이 좋아하던 노래를 불러야 하나// 무작정 걷다가/ 쓰디 쓴/ 소주잔을 부어야 하나// 밤새도록/한 편의 시를 써야 하나

  -<가슴이 아파요> 일부, 2008

 

  깊은 밤 ‘작은 바람결에/ 가늘게 들려오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당신이 그리울 때∽소주잔을 붓’게 하고∽ ‘밤새도록/한 편의 시를 쓰게 하’는 대상이 위의 시 ‘하얀 그림자’와 그 아래 ‘당신’으로 드러나 있다. 이형구 시인은 그의 첫 시집 머리말에서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응어리진 갈망들을 풀어내야 할 것 같아 ’나 여기 있소‘ 하듯 첫 시집을 발간한다’ 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정조는 ‘귀뚜라미 합창 사이로/ 시나브로 사라져간 그리운 얼굴’(<보름달>), ‘그리움으로 다가서는 너’(<창가에서>), 혹은 ‘무지개 드리운 이 밤/ 너와 함께 하리라’(<너>) 등에서도도 여전히 산견되고 있다. 그러나 제2시집 <<갯바람은 독공 중>>에 와선, 그의 시세계가 이전의 ‘그리움의 대상’으로서의 ‘너’가, 보다 크고 공의(公義)로운 사회적 자아로 대이화지(大而化之) 변모되어 있다.

 

  따뜻한 어미 품은 팔자에 없었다/송아지 한 마리/염생이 한 마리/강아지 한 마리/셋 다 우유 먹고 자랐다/송아지도 지어미 젖은 아니었다/세상이 어찌 되는 지/비 쏟아지는 날 더 많았다/추운 날 더 매서웠다/이놈들, 웅크린 날도 더 늘어났다

 

  공중의 새도 들의 백합도/먹이고 입히느라 바쁜 신이여/제발 이놈들에게/그 아무렇지도 않게 흔한 햇살 좋은 날이나/많이 보내주소서!

  -<이놈들에게 햇살 좋은 날을> 전문, 2013

 

  ‘강아지’, ‘송아지’, ‘염생이’가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에미가 없어(혹은 버려진) 남의 손에서 어렵게 자라고 있는 사회적 취약계층으로서의 대유물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춥고’, ‘비 쏟아지는 날이 많아’ ‘웅크린 날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그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간구하고 있다. ‘그 흔한 햇살’이라도 좀더 보내달라 기도하고 있음이 그것이다. 그가 바라는 소망이 이전의 소아적(小‘我的) 자아-그리움의 대상-에서 어느새 이타적 세계로 승화 ‘자아의 세계화를 도모하고 있다.

 

  파도가/힘없이 몰려와 부서진다//앙상한 폐선/등뼈 훤히 들여다보이는/방파제//짠물에 절어/검게 그을린 어부/끈질기게/버틴 해송//모두 갯바람 안고/독공 중이다//숨통 조인 채 나자빠진/거전포구는 아는지 모르는지/물막이 공사에 갇힌/숭어 떼 뛰고 비린내 아직 물씬한데 -<갯바람은 독공 중> 일부, 2013

 

  ‘검게 그을린 어부’, ‘끈질기게/버틴 해송’ 모두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시인은 고해의 바다에서 ‘갯바람 안고/독공’에 들어 저잣거리에 나아가 입전수수(立廛袖手)할 날을 다지고 있다. (김 동수: 시인,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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