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순리와 이치를 관(觀)하는 하심(下心)의 위민관
자연의 순리와 이치를 관(觀)하는 하심(下心)의 위민관
  • 김동수
  • 승인 2017.08.1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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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49. 송하진(宋河珍: 1952-)
  전북 김제 출생. 전주고·고려대 법학과·서울대 행정대학원(석사)·고려대 대학원(박사)을 졸업하고,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 이후 전북도청 지역경제국장과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전주시장 재임 중(2006년)에 첫 시집 <<모악에 머물다>>, 2012년에 제2시집 <<느티는 힘이 세다>>를 발간, 2013년에 제16회 한국문학예술상 특별부문상을 수상하면서 현재 전라북도 도지사로 봉직 중이다.

 

  속살 보이려니 부끄럽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만큼이나 시를 써야 할 이유도 많았습니다. 제 마음으로 쓴 시가 이제 홀로 제 삶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떨리는 손길로 세상과 맞닥뜨리는 시를 다시 한 번 어루만져 봅니다.

  - 시집 <<모악에 머물다>> 서문 중에서

 

  이번 시집 <<모악에 머물다>>에는 시인이 중학생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공무원에 이르기까지 만났었던 수많은 인연과 거기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이 시로 표현되어 있다. 김용택 시인은 발문 ‘문기가 느껴지는 사람’을 통해 “그는 시를 읽는 사람을 슬그머니 우리가 살아왔던 먼 저쪽 고향으로 데려다가 논두렁을 걷게 하기도 하고 어머니의 정화수에 얼굴을 비추어보게도 하고 아버지(서예가 강암 송성용)의 묵향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기도 한다”고 평했다.

 

  바람마저 눈부신 봄 날

  그렇게 느티나무는

  동네 사람들의 그늘을 그늘로 지우고 있었습니다.

  그늘이 그늘을 지우는 봄 날

  느티나무는 참 힘이 셉니다.

  -<느타나무는 힘이 세다>에서

 

  ‘동네 사람들의 그늘’을 자신의 몸(그늘)으로 지워주는 느티나무의 헌신적 사랑. 이는 홍익인간의 신념 아래 멸사봉공(滅私奉公)하는 목민관의 모습이다. 나의 삶이 나를 넘어 우리(동네 사람들)의 삶으로 승화되어 갈 때 그의 삶이 더욱 힘을 갖는다는 공직자로서의 소명의식에 다름 아니다.

 

 누워서 나무를 본다

 서 있는 나무를 본다

 누우면 너의 전부가 보인다

 뿌리를 감추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너는 어떻게 서 있는지

 누워서, 쉰다섯 해 만에

 서 있는 법을 배운다

 
 나무는 안다

 어느 날에 회해의 꽃 피워야 하는지

 어느 날에 안도의 숨쉬며

 낙엽들 떨구어내야 하는지

 
 나무는 안다

 결국, 뿌리내린 깊이만큼

 사랑의 줄기 뻗어나간다는 것을

 
 얼마만큼의 높이로

 서 있어야 하는지

 나무는 안다

 - <나무 아래 눕다> 전문, 『느티나무는 힘이 세다』(2010년)에서

 
 ‘누우면 너의 전부가 보인다’고 한다. 이는 스스로 몸을 낮추어 상대를 공경하는 하심(下心), 곧 겸손(謙遜)의 자세다. 주역 64괘 중에서도 가장 좋고 또 그만큼 어려운 쾌가 ‘겸괘(謙)’라 한다. 노자(老子)도 ‘도덕경’(66장)에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강과 바다가 가장 ‘아래’에 있기에 모든 계곡의 왕이 돤다(江海所以能爲百谷王, 以冀善下之)”도 이와 다르지 않는 가르침이다.

  <<도덕경>.에서 언급한 것처럼 겸손은 그만큼 수행하기 어려운 최고의 덕목, 그래서 ‘백곡의 왕(百谷王)’이 될 수 있는 게다. 이러한 겸(謙)의 자세로 시인은 한 그루 나무 아래 누워 자연의 순리와 이치를 관(觀)하여 내공을 다지고 있다. 이 외에 전주천에 돌아 온 <수달의 눈물>을 통해 ‘문명의 파편’에 ?겨나 있는 작금의 현실을 안타까워 한 친환경적 작품들도 있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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