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아가도 끝없는
묻어도 묻히지 않는 소실점 사이
외길 인생은 어느 지점에서
자꾸 주머니를 뒤져 승차권을 찾지만
절반은 아름답고
나머지는 애달픈
여수 가는 열차
타면 언제나 스물한 살
-<전라선> 일부, 2011
그의 첫 시집 첫 장에 실려 있는 시의 한 부분이다. 꿈과 현실,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며 신기루처럼 멀리 묻혀 있는 생(生)을 향해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시인의 자전적 모습이다. ‘아무리 쫓아가도 끝이 없는’ 그 무한의 소실점을 향해 어제도 오늘도 그는 산을 넘고 들을 건너 전라선을 달린다.
어찌할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원초적 갈증과 삶의 이유에 대한 질문으로서 그는 시를 쓰고 있다. 그것은 불완전한 존재자로서 평생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결핍 혹은 상처로서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환상일 수도 있는 상그릴라에 대한 인간 본원의 향수일 런지도 모른다. ‘절반은 아름답고’ ‘절반은 애달픈’ 두 갈래의 길 위에서 아직도 하차 지점을 찾지 못해 ‘자꾸만 승차권을’ 뒤지고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시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자 세상과 연결된 통로’, 시를 통해 ‘슬프고도 아름다운 삶을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는 그의 첫시집 ‘시인의 말’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연꽃잎이 부처라면
연밥은 벌집 같은 미륵불이다
한기가 도배지처럼 덧씌워져
외기보다 더 추운 쪽방에서 웅크리고 앉아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종일 얼음에 얼굴을 묻고 우신다
그러다 연의 마른 가슴속에서
새까만 구공탄이 되고
저 스스로 불붙어 뜸이든 밥이 된다.
밥심으로 길 떠난 연자들이
썩어가는 저수지마다
연꽃 향기 가득 채우길 기도하는 빈 절에는
구멍 숭숭 난 연밥이
풍경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연밥> 전문, 2015
초기에 보여 주었던 ‘분리와 단절’의 세계에서 시의 소재가 점차 우주적 자아로 내면화 되어 그것들과 통합을 시도하면서 지나온 삶을 반조하고 있다. ‘썩어가는 저수지마다/ 연꽃 향기 가득 채우길 기도하며’ 한 겨울을 나는 ‘연밥’의 일생과 ‘한기가 도배지처럼 덧씌워진- ‘구멍 숭숭 난 쪽방에서’ 자신을 태워 식솔(연자)들의 밥이 된 구공탄의 자기 소멸, 그것은 희생으로 점철된 ‘어머니의 일생’과 다르지 않는 시적 상관물들이다.
‘의사들이 하얀 반점을 별이라 부르는/ 그 별 하나가 반짝일 때마다/ 어머니의 이 생에 대한 기억 하나가 /꼬리를 물고 사라진다.(<다발성 뇌경색>)’에 와서도 생의 본원에 대한 사모(思母)의 정이 여전하다.
렌즈를 통해 세상의 풍경을 찍어내던 관찰자 시점에서 실존의 현장으로 시선을 돌려 동일성을 추구하던 그의 시세계가, 지난 해 어머니를 여의고난 후, 어디로 어떻게 변모해 갈 것인지, 그의 또 다른 소실점의 출구를 기대해 본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