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깊은 곳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소리 하나 있어
매일 밤 내 육신에
바늘구멍 하나씩 뚫어놓고 가는
소리 있어
황소바람 추운 이 계절에도
차라리 나는
산골짝 사시나무가 되어
떨다가
달빛 묻은 빈 가지로
기도하리라
-<내 영혼은> 전문, 2002
‘영혼의 소리’를 찾아 나선 순례자의 모습이다. 그것은 현상적 자아가 본래적 자아를 찾아 나선 영육일체의 세계, 혹은 개체적 존재로서의 자기 정체성(personal identity)을 찾아 나선 자기회복의 길이기도 하다. 일찌기 노천명이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보듯’ 김수화 시인도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쉽사리 함몰될 수 없는 영혼 하나가 ‘달빛 묻은 빈 가지로/ 기도하’고 있다.
‘별빛에 물든 내 영혼의 소리들 / 버리고 싶지 않은 소리들, 때로는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소리들’(2011, 시집 <<들꽃 같은 사람들>>- ’시인의 머리말‘)도 이와 다르지 않는 영적 세계의 한 모습이다.
하늘이 파르르 떨리는 듯해
깜짝 놀라 큰 눈을 하고 보니
하얗게 눈 덮힌 청솔가지 위에서
산 새 몇 마리 푸드득 허공을 가른다
그득히 고여 있던 정적이 일시에 출렁이며
여기저기서 나무들이 툭툭 눈을 턴다
겨울 숲에 번지는 이 청정한 파도
속된 인간을 거부하는 조그마한 몸짓들이었을까
나도 턴다
내 머리 팔 다리에 내려 앉은 눈을 털다가
털어낼 눈도 없는데 연신 턴다.
조그마한 몸짓으로
-<조그마한 몸짓> 전문, 2007
시 속의 화자는 어느새? 눈을 덮고 서 있는 산 속의 나무들과? 하나가 되어 청솔가지위에 나와?있는 산새들과도 하나가 되어 눈 속에 파묻혀 연신 몸을 털고 있다. 털고 털면서 그들과 하나가 되어 순수 본질의 나로 되돌아가고 있다. 청정무구를 지향하는 심미적(審美的) 적요가 털고 터는 조그마한 몸짓의 역동 구조 속에서 잔잔한 파동으로 다가온다.
이맘 때 쯤이면/ 한적한 어느 골목/ 때로는/서늘한 그늘 속에 묻힌 古宅의 돌담 옆에서/문득 발길 멈추고 두리번거리는/아,/ 꽃잎처럼 스치는 그 목소리
-<환청>전문, 2014
앞에서 보이던 ‘영혼의 소리’가 아직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발길 멈추고 두리번거리는/아,/ 꽃잎처럼 스치는 그 목소리’, 무엇이 이토록 그를 끈질기게 따라다니고 있는지? 그게 바로 김수화 시인이 결코 놓칠 수 없는 그의 시마(詩魔)요, 정체성 회복, 아니 절대의 영지를 향하는 자기 정화와 뮤즈의 세계 아닌가 한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