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시대 풍파
암울한 시대 풍파
  • 이문수
  • 승인 2017.05.1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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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5·18 민주화운동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 평전을 읽었다. 올해 초, 고인이 대학에 입학한 지 46년 만에 명예 학사학위를 받는다는 소식을 신문 한쪽에서 접한 적이 있었고, 최근에 출간한 책을 통해서 인간 윤한봉의 완전한 기록을 접했다. 순수하고 소박한 성품을 가진 그는 자신을 합수(合水)라 불리기를 바랐다. 합수란 두 줄기 물이 합쳐진다는 뜻으로, 재래식 화장실의 똥과 오줌이 합쳐진 똥거름을 말한다. 아주 쉬운 문장으로 쓴 평전이지만 행간에 배어 있는 시대의 아픔 때문에 책 장이 빨리 넘어가지 않았다.

 저자 말처럼 그의 삶에 대한 감동뿐만이 아니라 나의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지금의 삶을 직시하게 만드는 책이다. 유홍준 교수는 “25년 전, 윤한봉이 긴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마침내 귀국하게 되었을 때 세월은 무심하여 그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윤한봉, 그의 이름을 모른다면 나이가 아주 어린 사람이거나 인생을 너무 쉽게 산 사람이다. 일제강점기에 백범이 있었다면 군사독재 시절엔 윤한봉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윤한봉을 망명길로 내몬 5·18 민주화운동, 그를 광주·전남 학생운동의 구심점으로 발돋움시킨 민청학련 사건, 운동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던 국제평화대행진까지, 그의 인생을 뒤흔든 굵직한 사건들을 빠짐없이 서술하고 있다. 덕분에 그의 인생 역정을 가만히 따라가기만 해도 한국 민주화운동의 과정과 실상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윤한봉 밀항 사실이 공개되는 계기를 마련한 오송회 사건이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송회 사건은 전두환 정권 시절 벌어진 대표적인 용공 조작사건이다. 1982년 군산제일고 전·현직 교사 9명을 이적단체 조직과 간첩 행위 등으로 경찰이 구속한 사건이다.

 윤한봉이 5·18 이후 월북해서 밀봉교육을 받고 내려와 지하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황당한 각본을 만들어 그대로 진술하라고 고문을 가했다. 1982년 11월 2일, 전주 대공분실 지하실로 끌려가 고문기술자 신갑생에게 40여 일간 온몸을 묶고 엄지손가락에 전류를 통과시키는 ‘써니텐 고문’, 몸을 철봉에 매다는 ‘통닭구이 고문’, 얼굴에 먹다 남은 짬뽕 국물을 붓는 고문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 밥을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은 상태에서 수차례 폭행을 당한 교사들은 “처음에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나중에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매달렸다”라고 말했다.

 2007년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오송회 사건에 대해 ‘불법 감금과 고문으로 조작한 사건’이라면서 “국가는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과하고 재심 등의 조처를 해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같은 해 9월, 이광웅·박정석·전성원·이옥렬·황윤태·조성용·채규구·엄택수·강상기 씨 등 관련자 9명은 광주고법에 재심을 청구하기에 이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사 기록과 법정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당시 경찰과 검찰의 조서는 고문과 협박, 회유에 의한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라면서 “통닭구이와 물고문, 밤샘 조사 등 갖가지 고문을 통해 공소사실이 억지 작성된 점과 재판 역시 공포스런 분위기 속에서 작성된 허위 진술서를 토대로 이뤄진 점 등이 넉넉히 인정돼 무죄를 선고한다”라고 밝혔다.

 너무 맑아서 불온한 시인으로 몰려 억울한 감옥살이를 마친 이광웅 선생은 독재 권력 속에서도 이슬 같은 영혼의 숨결을 토해 내고 있는 시집 <목숨을 걸고>에서, “이 땅에서 진짜 / 술꾼이 되려거든 /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 진짜가 되려거든 / 목숨을 걸고 / 목숨을 걸고…”라고 했다.

 지난해 2월, 전북도립미술관은 <전북미술 모더니티 역사> 전을 했다. 전북 근현대 미술을 연구해서 정체성을 규명하고 맥락 지으려는 시도였다. 그 전시에 굴절된 시대의 한파를 피할 수 없었던 화가 엄택수 선생의 작품 <자화상>을 초대했다. 그것은 1972년 자화상이다. 온몸이 밧줄로 칭칭 감긴 채 절규하고 있는 형상을 담았다. 암울한 시대의 억압과 스산한 자신의 인생 험로를 예단한 것일까. 그는 출소해서 창작열을 불사르다가 돌연한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눈을 들어 보면, 우리 주변에는 암울한 시대 풍파를 지금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더 무더운 날이 오기 전에 엄택수 선생을 찾아 가 봐야겠다.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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