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수난
소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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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2.2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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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양의 들판 길을 소달구지를 몰고가는 농부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어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대하소설 "대지"의 작가 "펄 벅"이었다.

▼ 경주(慶州) 등을 관광한 후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게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미국의 농부였다면 소달구지에 올라타고 갔을 것이지만 특히 한국 농부는자신이 지게에 짐을 가득 지고가면서도 빈 소달구지로 몰고가는 인간적 배려가 매우 감동을 주었음직하다.

▼ 한국인들은 소를 축생(畜生)이라 부르지 않고 노비(노비)와 같은 호칭인 생구(生口)라고 불러 인격시하는 전통적 동물관이었음을 읽을 수 있다. 조선 성종(成宗)때 물소(水牛)가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한국 소와 달리 거칠고 난폭해 심지어 사람을 해치는 등 사납게 굴어 먼 남쪽지역에 유배를 보냈다.

▼ 그런데 유배된 물소가 주는 밥을 먹지않고 매일 눈물만 흘리고 있다는 전라감사의 보고를 듣고 성종은 "말을 못하는 짐승이지만 타국 땅에서 얼마나 고향의 가족들이 그리웁겠는가?”라며 유배를 풀어주었다. 요즘이야 소는 식육(食肉)으로 대부분 쓰이지만 농경문화에서는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최근 소들이 구제역 확산으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지 안타깝다.

▼ 충북 보은 한우농장에서 부터 발생한 구제역이 전북지역을 비롯해 전국에 확산 위험을 안고있다. 구제역 발생에 따른 살처분. 예방을 위한 백신접종 등 수 조원의 비용을 들여 차단 노력을 하고있으나 잡초처럼 구제역이 자라나 엄청난 전염력을 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도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죽어가는 소들. 인간들의 관리 부실로 수난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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