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인생을 적극 개척해 나가는 김혜영 선생님
다채로운 인생을 적극 개척해 나가는 김혜영 선생님
  • .
  • 승인 2017.02.13 0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쑤의 한인사회

 스케줄이 꽉 차있는 김혜영 선생님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터뷰 시간을 그녀가 퇴근한 후인 저녁 시간대로 잡고, 2월 7일 난징 시엔린(仙林) 쉐진로(學津路)에 위치한 한식당 함평집에서 드디어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앞서 필자의 친구인 정미옥 선생님이 소개한 대로 김 선생님은 전형적인 한국 미인이었다. 날씬한 몸매에 갸름한 얼굴형이었으며 오뚝한 콧날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웃을 때는 눈에서 정기가 돌아 빛나고 새하얀 치아가 드러났는데 ‘명모호치(明眸皓齒: 맑은 눈동자와 하얀 이의 미인)’ 라는 성구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저는 2006년에 처음 난징에 와서 2008년까지 한 학교의 보충학습반에서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그후 영국으로 가서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2년 후에 다시 난징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난징 허시(河西)의 이튼(Eton House)국제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김혜영 선생은 이튼국제학교에서 매주 20시간씩 강의하고 있는데 한국 어린이 17명과 다른 국가의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근무지가 지금 살고 있는 곳과 매우 멀기 때문에 두 곳을 왕복하는데 비교적 힘이 든다고 하였다. 2013년,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시엔린 지역에서 한식당을 개업하고 상호를 ‘함평집’으로 정했다. 어머니가 한국 전라남도 출신이고 국내에서 한식당을 경영한 적이 있기 때문인데 함평은 바로 전라남도에 속했다. 그래서 ‘함평집’을 난징에 개업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남편인 김준환 씨가 최근에 난징에 와서 어머니를 도와 가게를 운영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남편과 어머니는 아직 중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게의 많은 일들을 그녀 자신이 직접 챙겨야 한다고 하였다.

 식사를 하면서 김 선생님의 친구인 정미옥 선생님은 작년에 김 선생님이 아들을 보았다고 하였다. 난징 밍지(明基)병원에서 출산하였는데 아직 한 돌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10개월밖에 안 된 아기 이야기가 나오자 김 선생님은 매우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재미 있는 에피소드를 들려 주었다. 그녀는 무남독녀였고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으며 어머니는 그녀를 끔찍하게 사랑하였다. 임신 초기에 그녀는 한국음식은 잘 먹지 못하고 오히려 중국의 라면, 오리선지국수, 오리목 절임 같은 음식을 즐겨 먹었는데 한국음식보다 중국음식이 오히려 거부반응이 심하지 않았다. 임신 3개월째 어머니는 딸에게 아들도 좋고 딸도 좋다고 말씀하였지만 나중에 정작 손자를 안겨 드리자 엄청 기뻐하시면서 연해연방 감탄을 하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김 선생님은 지난 주에 영국 노팅엄대학교의 교사자격증을 취득하였다는 희소식을 전하였다. 며칠 전에는 또 쥐룽시(句容市) 비구이위안(碧桂園) 주택단지에서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하였다고 한다. 김 선생님은 일가족이 이제는 난징과 완전히 융화되었다고 하면서 올해 설날도 난징에서 보냈다고 하였다. 또 난징은 깨끗하고 녹화도 잘 되어있으며, 시민들도 친절해 난징에서 생활하면서 안전함과 행복감을 많이 느꼈다고 하였다.

 현재 김 선생님 일가족은 매우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는 가게에서 양념 등을 만들고 있고 또 한국요리를 하는 주방장을 초빙하였으며, 아기를 돌봐주는 중국인 가정부도 두고 있다. 남편은 가게에서 손님 접대를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학교, 가게와 집을 오가면서 ‘총괄 담당’을 하고 있다. 미래 계획을 묻자 김 선생님은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과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 그리고 가게의 장사가 잘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하였다.

리쭝창·李宗長 글/사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