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고민을 말할 수 있는 부모
136. 고민을 말할 수 있는 부모
  • 한성천 기자
  • 승인 2013.12.03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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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질녘이었다. 날은 추웠고 사람들은 옷깃을 여민 채 총총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아무도 없는 학교 앞에서 울고 있었다. 아직 집에 가지 않았는지 가방을 맨 채였다. 지나칠 수가 없었다.

다가가서 물었다. “늦었는데 왜 집에 가지 않고 울고 있어?” 아이는 경계하는 표정을 지으며 울음을 멈추었다. “널 도와주려고 해. 말해 봐.” “….” 아이는 말하려 들지 않았다. 아이를 겨우 설득해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실내화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전에도 휴대폰을 잃어버린 적이 있어서 그냥 집에 들어가면 엄마한테 혼난다고 했다. 그리고 몇 번을 더 흐느끼며 울었다. 실내화를 잃어버린 일이 추운 학교 앞에서 이처럼 울고 서 있어야 할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어디 살아?” “엄마가 가르쳐주지 말라고 했어요.” “엄마 연락처 좀 가르쳐 줄 수 있어?” “그것도 엄마가 가르쳐주지 말라고 했어요.” 난감했다. 날은 저물어 가고 아이는 울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널 도와주려고 해. 엄마 연락처를 좀 말해줄 수 있겠니?” “….” 간곡히 요청했건만 아이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얼마를 더 간청했는지 모른다. 진심이 전해졌던지 겨우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앞뒤 사정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대답을 들어야 했다. “그 아이, 집으로 보내세요. 참나. 왜 그런데.”라고 했다. 아이가 자신에게 창피를 주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상식적이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런 경우 대개, 아이는 괜찮으냐? 고맙다, 아이를 잘 달래서 집으로 가게 해 줘라? 이렇게 말해야 옳지 않겠는가?

어이가 없었지만 아이의 엄마에게 아이를 혼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아이는 통화 내용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네 엄마가 괜찮다고 하시며 어서 집에 들어오라고 하시는구나.” “그래요?” “그래, 그러니 어서 집에 가.” “실내화는 요?” “실내화는 내일 아저씨랑 찾아보면 어떨까? 학교에 가면서 이리로 와.” “그럼, 오늘은 집에 갈게요. 고마워요” 아이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갔다.

아이는 엄마에게 혼나는 것을 왜 그렇게 두려워하고 있었을까? 부모에게서 공포와 가까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아이가 학대를 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아동학대가 가정에서 많이 늘어나고 있다. 신체적 학대, 정신적 학대, 방치와 방임까지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 되는 사례가 해마다 20%씩 증가하고 있다. 최근의 아동 학대는 폭력과 폭언을 물론이고 음식물을 제공하지 않는다든지 장시간 방치하는 것도 포함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 부모여야 한다. 꾸지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신의 실수까지도 털어 놓으며 고민을 말할 수 있는 부모를 둔 아이가 있다면 행복한 아이다. 그 아이는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며 성장할 것이다.

다음날 아침, 실내화를 같이 찾아보자는 약속 때문에 어제 아이를 만났던 장소에 가서 기다렸지만 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밤사이 아이에게 아무 일도 없었길 바라며 출근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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